오늘의 행운과자 점
참 이상해요. Fortune Cookie= 행운과자 일텐데, 포춘쿠키라고 쓰면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고, 행운과자라고 쓰면 촌스러운 듯한… 게다가 결국 이 행운과자라는 녀석은 중국문화(아니면 미국의 저주를 입어 변질된)의 산물일텐데 원어에 가까운 행운과자라는 말이 더 촌스럽게 느껴지다니, 아무래도 잘못된 영어교육에 되도 않은 영어를 쓰면서 사는 외국 생활 덕분에 모국어 능력도 갈수록 퇴화되는 기분이네요.
각설하고, 오늘 오랜만에 잘 가는 중국집(이라고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MSG를 쓰지 않는 집이죠. 그래서 음식맛이 조금 심심하지만 뒷끝이 나쁘지 않은 집이에요)에서 점심-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밥을 사먹을까 말까 합니다. 오늘도 차 안 가지고 회사에 오는 한국 선배들이 생일케잌 사는거 도와달라고 해서 점심 얻어먹고 모시고 다녔죠-을 먹었는데 끝에 나오는 과자에 위와 같은 문구가 들어 있더라구요. 저는 뭐 이 과자점을 순수한 재미로 보는 편인데, 오늘은 저 짧은 두 문장이 무엇인가 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밥을 다 먹고는 한참을 들여다 봤어요.
뭐 사실 저는 과연 어떤 삶이 정말 어려운 삶인가, 에 대한 모범 답안 같은 것을 그다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달리 말하면, 뭐 웬만큼 어려운 일들이 닥쳐도 그게 저나 주변 사람의 생명의 존위에 직접 연관 되거나, 혹은 밥을 굶을 정도까지의 재정적인 위기가 아니라면 그렇게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겠죠. 그래서 어느 한 편으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무감각하기도 한데, 가끔은 저라는 사람의 삶 어느 한 구석이 굉장히 어렵고 불편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을 별로 하지 않았었는데, 지난 몇 년간은 계속해서 삶이 저의 기대, 또는 노력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분명하게 배울 수 있는 기간이었어요. 몇 년 전에, 그렇게 도둑이 많다는 로마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멀쩡히 다녔는데, 떠나기 전날 오후 호텔로 돌아가기 직전에 들렀던 판테온 근처의 젤라테리아에서 카메라를 도둑맞고 망연자실해하자 때마침 로마에 일로 머무르시던 아버지의 친구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여행을 하다보면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구요. 모든 시간을 품고 흘러가는 사건들을 여행을 이용한 은유의 틀에 끼워 맞출 수 있다면 그 첫 번째가 삶이 될테니, 뭐 결국 삶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겠죠. 다만, 그런 사실을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라서 그동안 꽤나 발버둥치면서 그 흐르는 물결의 방향을 바꿔 보려고 발버둥치기도 꽤 많이 했는데, 결국 그래봐야 인간이 자연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더 뼈저리게 깨닫듯, 저도 하나의 유한한 존재로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큰 줄기가 있다는 것을 정말 여실히 깨달았던 지난 몇 년이라고나 할까요… 뭐 셋 중에 하나 집어 들은 과자에서 나온 두 줄의 문구 가지고 너무 생각이 많다고들 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저의 삶이 그렇게 평안하지 못하게 흘러갈 운명 비슷한 것을 타고 났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기 때문에, 저렇게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는, 그저 어느 지루한 금요일 오후에 과자 공장에서 아무 생각 없은 직원 하나가 채우다 채우다 못해 남은 종이에 아무렇게나 써 넣은 문구를 보고도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삶에 만족을 못했던 적은 없던 것 같아요. 특히 요즘에는… 괴롭고 짜증나는 일이야 어쩌면 더 많아지는 것 같아도, 그건 그만큼 제가 나이 먹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테니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잖아요. 지금의 나 말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더 행복했을까, 생각해봐도 그렇게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정신적 자위-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지만 하여간-를 동원해서라도 이 삶이 저에게 그렇게 못마땅한 것은 아닌 모양이죠 뭐.
참, 억지로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보답 같은 것은 별로 바라지 않아요. 지금 이만큼만 되어도 일단은 만족이라서요.
# by bluexmas | 2007/08/21 12:01 | Life | 트랙백 | 덧글(11)
하지만 뭐 언젠가 해답이 있겠죠. ㅎㅎ
저도 저 과자 참 좋아합니다!ㅋㅋ
식사가 끝나면 과일같은 후식과 함께 한바구니의 포춘쿠키를 갖다주는데, 저 문그는 단골 문구인가봐요.^^ 먹을 때마다 누군가의 쿠키에서 꼭 나오더군요. 언제는 세살짜리 조카애의 쿠키에서 저 문구가 튀어나와, 픽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항간에는 포춘쿠키의 시작이… 중국의 4자성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저건… ‘고진감래’ 정도 되겠네요.^^
요즘은 ‘포춘’과 더불어 중국어 강좌도 하는 쿠키도 있어요.
간단한 단어가 한문으로 씌여져있고 영어표기, 발음기호, 그리고 뜻이 씌여져 있는…. 포춘 쿠키 같은 것도 자꾸 진화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D-cat님: 저는 언제나 기운 내고 있어요. 오히려 좀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Josée님: 요즘 블로그 업데이트가 뜸한 것 같은데, 여름 막바지에 많이 바쁘신가봐요. 잘 지내시죠?^^ 과자 자체는 사실 별 맛이 없죠. 그냥 우연의 즐거움이랄까요?
erasehead님: 중국음식은 원래 모여서 나눠 먹는 맛인 것 같아요. 이태리 음식도 좀 그렇죠… 세살박이에게 고진감래라니 좀 그렇네요. 저는 열 한 배 나이가 많아서 그럭저럭 받아들일만 하답니다. 사람 머리통만한 포춘쿠키에 인생살이의 정수만을 담아 파는 행운과자도 있다고 들었어요.
비공개님: 제가 먹은 어이없는 문구들만 조합해서 시를 써도 책 한 권 채울껄요?뭐 ‘MSG는 중국음식에 필수니까 두통을 얻으면 너만 바보다’ 라든지 ‘더 이상 양을 빌리려 하지 마라, 너의 불면증은 불치다’ 랄까-_-;;;
보답은…글쎄요…
전 부모님 오셨을 때 “당신이 이 plan을 잘 어레인지해줘서 그들이 고마워할거다”라는 게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부모님 오신다고 해드린 것도 없는데 괜히 그 종이가 나와서 부모님 앞에서 의기양양 우쭐우쭐댔다죠. 흐흐흐흐.
blackout님: 그것 참 금상첨화인 문구군요! 세상은 불공평해요. 저같은 사람은 요모양 요꼴로 사는데..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