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죽음에 관한 짧은 이야기

 언제나 수원의 아버지에게 메일이 오는 시간-여기 시간으로 오후 다섯시 정도-에 메일이 왔더라구요. 늘 그 시간대에 일어나셔서 메일을 보내시니까…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의 고종사촌동생 되시는 분이 돌아가셨는데, 제가 여기에 언급해야될 이유가 없는 여러가지 가정사에 관련된 상황으로 인해 직계가족도 손아래도 아닌 아버지가 장례를 치르다시피 하셨다더라구요. 아버지의 사촌동생이니 제가 어릴때 뵈었던 기억이 날 법도 하겠지만, 한다리만 건너도 가족의 정과 같은 건 희석되다시피 하는 요즘 세상에 솔직히 제가 아버지의 사촌동생 되시는 분께 일반적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것 이외의 감정을 가지기는 좀 무리겠죠. 그래서 저에게는 그 분의 부음보다는 이 더운 한 여름에 아버지가 이래저래 고생하셨을게 더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좀 일찍-이라봐야 정규 근무시간 이후 한 시간 이내였지만-퇴근할 수 없을까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잠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제가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아마 화냈을지도 모르죠. 뭐 삶은 하나의 꽉찬 원 Full Circle을 그린다고 하던가요, 보호하고 보호받는 부모자식 사이의 역학관계가 역전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자식이 아직 능력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무력감은 그 어떤 조직이나 무리의 성원으로써 느끼는 무력감보다 더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그리고 지금 해봐야 쓸데없겠지만, 나도 당신들 나이만큼 먹고 자식 없으면 꽤나 외롭겠군… 이라는 뭐 피할 수 없는 생각같은 것도 역시 들더라구요. 성을 쌓고 싶은데 조약돌 하나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 같은게 퇴근을 앞둔 책상머리에서 문득 들었습니다.

2. R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미국 대부분의 회사에 사무보조용역(복사물 관리, 우편물 배달…등등)을 해주는 외주업체가 들어와 있는데, 이 친구는 제가 다니는 회사의 용역업체 직원이에요. 뭐 보면 인사도 잘 나누는 편이었는데, 작년 가을이었나, 예비군 훈련 간사이에 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그러더라구요. 이유와 결론을 다 제껴두고라도, 배우자를 잃는 기분이라니… 저도 기분이 그래서 카드와 부조금을 주었었죠. 그리고는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는데(물론 속내는 모르죠…), 지난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더라구요. 참, 삶의 그림자가 죽음일테니 살면서 죽음을 피하려는 것 같은 멍청한 생각이 없겠지만, 그래도, 좀 드문드문 찾아와 줄 수는 없었던 걸까요. 저의 일도 아니고, 제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래서 이 두 이야기들이 요즘 저를 스치고 지나간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죠. 언제나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그 끝이며 가장자리가 날카로와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잘 모르는 사람의 그것이라도 항상 아프게 스치고 지나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by bluexmas | 2007/08/15 13:32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16 11:45 

비공개 1&2님: 마음이 아픈 얘기네요. 저도 제 차례에 대한 생각을 사실 많이 한답니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하는게 참 그래요. 사람이 죽으면 ‘영혼목장’ 에 간다고 들었어요. 일종의 갱생센턴데 전생에서 찌든 영혼을 세탁 및 선별해서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더라구요. 전생에 남자면 다음 생에는 여자, 전생에 여자면 다음 생에는 남자로…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7/08/17 03:26 

전 엊그제 밤에 집에 오니까 복도에 경찰들이 보이고, 옆집 문이 열려있더라구요. 경찰들이 무전기들고 뭐라뭐라 하고 있고..,(제 다른쪽 옆집은 소음때문에 제가 매일 전쟁하는데 그 집이 아니고 반대편 집…)

완전 놀래서 그 옆을 슥슥슥 지나가서 제 방 문을 열다가 경찰하고 눈이 마주쳐서 물어봤어요. 무슨 일 있냐고. 그랬더니 경찰 하나가 다가오더니

“이 집에 누가 사는지 아느냐”고 묻길래 “어떤 나이많은 여자분이 사시는 걸로 안다.”라고 했죠. 이름은 모르지만 옆집이니 가끔 마주쳤었거든요.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보조기구 없이는 못걷는 할머니셨는데, “she passed away.”라는 말에 놀랐어요. 그래도 자연사하셨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했는데, 그래도 며칠 전에도 길거리에서 한번 뵜던터라 마음이 아픕니다. 며칠째 집 문이 경찰이 싸인한 커다란 스티커로 봉해져있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17 13:04 

intermezzo님: 미국에서는 아마 그런 일이 많을거에요. 그렇게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 뉴욕같은 도시에 사시려니 많이 힘드셨을텐데…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고사가 아니라니 가시는 길이 편안하셨기를 바라는 수 밖에요.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그것보다 덜 외롭기를 역시 바라는 수 밖에는 없죠.

비공개님: 저의 불어 어휘력을 맹신하시는 것 아닌가요?-_-;;; 사람이 살다가 어려우면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하겠지만, 저도 언젠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죠. 누구도 거기가 어떤 곳인지 다시 돌아와서 말해주지 않으니까 내 손으로 걸어 가지는 않겠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