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the Mosaic of Myriad Deja Vus
대체 Deja Vu에도 복수형이 존재하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쓰려고 온라인 사전 몇 군데를 뒤져봤는데 어디에도 복수형이 명기된 곳이 없더라구요. 맞는지 모르겠지만 넘어 갈랍니다…네, 원래는 불어에서 왔다죠)
또 휴가얘기야? 라고 제 블로그에 자주 찾아오시는 분들은 지겨워하시겠지만, 알고보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휴가가 이 모든 사건사고의 기폭제였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듯한 소리를 내며 무섭게 몰아치는 겨울 바다의 파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천길 낭떠러지에, 그리고 육체적인 반쪽은 찌는 듯한 날씨로 인해 불지옥에 몰려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정신과 육체가 각각 극과 극인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다 보니 궁극적으로는 저라는 사람의 존재가 그 극과 극 사이에 골고루 존재하기 위해 늘어나다가 끊어져서 그 쪼가리들이 붕 떠버린 것 같더라구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고무줄도 한 없이 늘어나는 것 같다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끊어져 버리잖아요. 뭐 그런 상태라고나 할까요?
하여간, 금요일 내내 뭔가를 끝내기 위한 스트레스에 쩔어 마우스질을 하고 있노라니, 언제나 정신없었던 군대시절의 토요일이 생각나더라구요. 군대에서 저는 뭐 약간 방황을 하다가 결국은 1종(식품) 계원으로 정착되어 대대본부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보통 군부대에서는 토요일 오전에 대대장이 주최하는 주간 회의가 있었죠. 저는 뭐 취사병이 아니니 직접 조리도 안 하고, 그저 먹거리가 안 떨어지게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그 회의 자체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었는데, 언제나 그 회의를 앞두고는 전체 사무실 분위기가 공포스러웠던데다가, 제 한참 밑으로 들어온 작전병, 그 회의의 준비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만 했던 녀석이 그야말로 또라이 였었기 때문에 매주 토요일은 항상 스트레스에 사무실이 푹 잠기곤 했죠. 결국은 그 작전병녀석이 주간 회의록 준비를 아예 안 하는 바람에 모든 부서원이 토요일 오후에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아야만 했고 따라서 저도 제대 40일 남겨 놓고 생전 안 돌아본 군장을 돌아야만 했다는 슬픈 기억이… 그것도 따지고 보면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일이었으니 더 어이 없었겠죠.
어쨌거나 이 장황하고 지루한 군대시절 얘기를 하는 이유는, 살면 살수록 삶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반복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죠. 그러니까 지난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에 푹 쩔어 일을 하다보니 언젠가 이런 상황을 겪은 기억이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 기억의 보관철 같은 것을 더듬어보니 군대시절 영상이 머리에 떠올랐다는 것… 하여간 그렇게 상황이 반복된다면 비슷한 성질의 상황에 두 번째, 세 번째로 던져지게 된다면 그 상황을 더 잘 넘겨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저를 제외한 등장인물이 대부분 교체되는 편이고, 그 바뀐 등장인물 때문에 아주 짜증나는 방향으로만 상황에 변주가 가미되어서 언제나 겪는 어려움들은 비슷한 것 같더라구요. 아니면 갈수록 더 강도가 높아질 수도 있겠죠. 저는 나이를 먹을테고 거기에 맞춰서 주변의 기대는 높아만 질테니까.
이제 서른 몇 살에 삶이라는게 예전에 벌어졌던 상황들의 수많은 반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지금으로부터 한 20년쯤 후에는 대체 어떤 기분으로 살게 될까요… 금요일에 반쯤은 오후에 억지로 쑤셔넣은 더블샷 에스프레소의 카페인에 취한 들뜬 기분으로, 또 나머지 반쯤은 스트레스와 굴욕감 따위로 범벅된 우울함으로 집에 돌아오면서, 그렇게 삶의 상황들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기쁨에는 예민해지고 슬픔에는 둔감해지면 그래도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봤는데, 벌어지는 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반대일 확률이 훨씬 높아 보이더라구요,
아, 역시 써놓고 나니 별로 두서가 없네요. 요즘은 생각들이 찰떡처럼 완전히 뭉쳐서 뭘 써도 그렇게 명료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러나 귀찮아서라도 비공개로 돌려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니 요즘 많이 뻔뻔스러워졌군요. 예전 같았으면 바로 비공개로 돌려져서 저 깊고 깊은, 저의 굽이굽이친 뇌주름 어딘가의 폐기장으로 사라졌을텐데.
# by bluexmas | 2007/08/12 15:19 | — | 트랙백 | 덧글(6)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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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님: 저 맨날 금요일에 퇴근할때 ‘내가 월요일에 아홉시 반까지 출근 안 하면 뭔가 일이 있어서 죽거나 다친거니까 911을 집주소로 불러라’ 라는 말을 남기곤 하죠. 특히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다리 부러질 뻔한 다음부터는 더 그렇답니다.
비공개 3님: 알고보면 저도 한 60%정도는 인문학에 가까운 걸 공부하다가 일단 접었었다죠. 저는 능력이 없는 사람보다 자기를 정확하게 모르거나, 자기를 알면서 모르는 척 자신도 속이고 남들도 속이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저에게 해주신 말씀, 정말 도움되는 말씀이에요. 제가 요즘 딱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다면 일단 꺾으려고 하니까요. 하여간 말씀 감사합니다^^
비공개 4님: 그 왜,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요. 제타 건담 마지막화(52화였나요? 수자는 잘 기억이…)에 보면 죽은이들의 영혼이 카미유와 제타를 둘러싸고… 저는 몇 년전에 완전 바닥을 치고 나서는 더 이상 저 스스로 바닥을 치게 허락하지 않는지라 지금 이 상황을 뭐 세상 내지는 제 존재의 끝으로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말씀해주신 것 잘 알고 있고, 또 감사도 드리고 있구요. 또한 비공개님이 얼마나 제 블로그에 귀한 손님이신데요…^^ 감사합니다.
비공개 5님: 그 비공개 덧글의 가장 나쁜점은, 제가 비공개로 덧글을 다신 분한테만 비공개 덧글을 드릴 수 없다는 거죠. 예전에 어떤 분의 비공개 덧글에 덧글을 달고 비공개로 해 놓은 다음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 그 분은 덧글을 못 보셨을 듯… 생각해보니까 요즘 학교 체육관이 유지보수공사로 문을 닫아서 운동을 제대로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잘 안 풀린다는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어요.
비공개님 유머감각은 언제나 저의 그것에 비해 참신하니 별로 걱정하지 않으셔도(저는 언제나 미국식 썰렁한 유머만 늘어놓다가 욕먹기 일쑤라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