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머뭇거림

벌써 열 두시 오십분, 자야할 시간을 거의 한 시간이나 넘겼는데, 어제도 네 시간 반 밖에 못 잤고 미치도록 피곤한데도 왜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이제서야 쏟아지기 시작하는지… 언제나 낮은 너무 길기만 하고 또 밤은 짧기만 하고, 불행한 순간들은 낮과, 또 행복한 순간들은 밤과 짝을 이뤄서 해와 달이 뜨고 지듯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나란히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에 공동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었군요. 그냥 엑스트라로라도 좋으니까, 저도 데려가주세요. 그 어디로든… 이제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생활에도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동안 제가 그 어느 세계에도 발을 담그지 않는다고 마음에 들지 않아했던 누구들에게라면 바로 지금이 좋은 기회일거에요. 제가 잠깐 잠들어 있는 사이에 저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낯선 정체성의 가면을 씌워놓고 그게 저라고 한들, 저는 속는 줄 알면서도 믿는 척 할 수 밖에 없을만큼 지금의 이 생활에 피곤을 느끼고 있어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른 누군가로 사는데 맞장구를 쳐드릴 자신은 있거든요. 그냥 내일 아침이 오면, 잠깐 나쁜 꿈을 꾸었다고 한 마디만… 그럼 저도 모른 척 멋적게 웃으면서 사실은 너무나도 낯선 다른 이로서의 삶에 몸을 던져볼께요, 다시 한 번 삶에 속고 있다고 생각이 들때까지라도, 아마도 그때쯤이면 그 낯선 정체성의 가면 뒤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겠지만.

 by bluexmas | 2007/07/31 14:03 |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by 카렌 at 2007/07/31 15:00 

우렁총각으로 세뇌하기도 좋은 기회 같은데요 @ㅅ@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7/31 20:54 

전 너무 피곤하면 잠 안오는 건 물론

그동안 생각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밀려오고 뭐 그래요.

몸은 가만히 누워있는데 머리만 혼자 바쁜 상황.

낮동안 바빴던 몸을 따라가주지 못해서

뒤늦게서야 이 머리가 난리를 치는걸까요 ㅎㅎ

어쨌든 여행은 어떠셨나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01 11:24 

카렌님: 이미 자체 세뇌된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던가요…?-_-;;;

핑크님: 저도 그런 경향이 좀 있죠. 괜히 하루 그냥 너덜너덜하게 보내고 밤에 아쉬워하는… 여행은 너무 더웠답니다. 부작용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어요. 오늘은 일찍 자려구요^^

 Commented at 2007/08/01 17: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02 12:29 

비공개님: 너무 더워서 죽을 고생했어요. 저도 술 너무 마시고 싶은데 주말까지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