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ssimistic Cloud 9
…그렇게 극성스럽던 더위마저도 햇볕에 바짝 말라버릴 것만 같던 일요일 오후, 쿠바로부터 고작 8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미국의 마라도에서 돌아오는 비행길, 이렇게 아름답던 구름밭처럼 저의 기분도 좋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정말 오랜만의 과음과 요동치는 비행기는 결국 저의 위액으로 하여금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도록 허락하고야 말았습니다. 아, 기분 정말 무지하게 끈적끈적거리더라구요. 거기에다가 오래되고 좁아터진 비행기의 그 쩔어붙은 냄새는 정말, 코를 막아도 땀구멍으로부터 조차 맡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왕복 세 시간의 비행은 아틀란타-서울간의 열 다섯시간 반짜리의 그것에 맞먹는 최악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플로리다의 남쪽 끝, 무리지어 있는 섬들의 맨 마지막 동네인 Key West로 자의반 타의반의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자의반 타의반’ 이었던 이유는, 아주 예전에 블로그에서 얘기했던 친구의 Bachelor Party 때문에 가야만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죠. 별로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어 최근에 뽑은 이를 핑게대고 가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하필 초대받은 친구의 친구들 가운데 하나가 치과 의사라서, 그 핑게가 별로 먹힐 것 같지 않아 결국 이렇게 다녀 오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에게 약간 미안한 구석이 있었지만, 별로 끼고 싶지 않은 구석들이 있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돌아다니고, 책을 읽으며 보냈다지요. 덕분에 그동안 못 읽었던 Anthony Bourdain의 책을 드디어 끝내고, Jeffrey Steingarten의 It Must’ve Something I Ate도 1/3 정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휴가라면 좀 더 조용한 바다로 갔었어야 하는데… 또 기회가 오겠죠.
아, 역시 집에 있는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더구나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사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가족여행 이후로는 여름에 절대 휴가를 가지 않습니다. 고생하는 휴가는 휴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집에 간신히 돌아와서도 텅빈 냉장고를 보고 있노라니 너무나 심한 상실감에 시달려서, 가까운 수퍼마켓에서 간단히 장을 봐다가 다음주를 위한 몇 가지 반찬들을 후다닥 만들고 나니까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나네요. 워낙 저의 취향이 아닌 동네인데다가 미친듯이 더워서 별로 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여행기는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올릴 계획입니다.
그나저나, 다들 잘 계셨는지요? 언제나 들러주시는 분들께는 약소하나마 선물로 그곳의 호도과자 격인 Key Lime Pie의 사진을 올려드립니다. 일반 Lime보다 작은 Key Lime으로 만드는데, 사실 이제 Key West에서 Key Lime은 나지 않는다더라구요. 대부분 브라질이나 혼두라스 같은 동네에서 수입한 것들이라고… 거의 매끼 디저트로 각기 다른 곳에서 먹어봤는데, 이 녀석이 제일 맛있어서, 두 번이나 먹으러 갔었습니다. 첫 번째 먹을때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았거든요.
그럼, 며칠 쉬었으니 또 열심히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며칠동안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귀찮아서 적어놓지 않았더니 역시나 기억나는게 별로 없네요. 여행지에서의 생각은 너무 휘발성이 강해서 문제라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바람에 실려 다 날아가 버리는걸까요?
# by bluexmas | 2007/07/30 14:00 | Life | 트랙백 | 덧글(4)
침샘에서 미친듯이 침분비가..ㄷㄷㄷ;;;;
진짜 맛있어보여요~~츄릅..ㅠㅠ 진짜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이 너무 슬퍼요.흑..;
Key west는 멋진 해변이 있는 휴양지라고 생각했는데, 다녀오는 길이 험난하군요;;; 고생하셨습니다;^^
bluexmas님, 이것이 바로 해변이다! 라고 선언하는 멋진 바다 사진 보여주시길.
Eiren님: 멕시코는 그냥 라임도 많이 생산하나봐요. 어제 저녁에 고기 잴때 쓰려고 산 라임도 멕시코산이었으니까요. 저 파이의 머랭은 여태껏 본 것중에 최고였어요. 그리고 Key West의 해변은… 사실 갈 시간이 없었는데, 갈 데도 별로 없더라구요. 고생은 제가 사서 한 거니까 할 말이 없답니다^^
이비님: Key West는 사실 소돔과 고모라 분위기던데요? 여러가지 일로 죽는 줄 알았답니다. 사실 이 여행에서는 해변에 가지도 않았고, 사진도 안 찍었는데 더 나은 바다 사진이 있어요. 예전에 올린 글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