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버섯 Butter Sauce Tortellini

가끔은 일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좁은 사무실에서 사람들이랑 다닥다닥 붙어 있는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더 늦게까지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니, 사실은 자주 있어요. 매일 그럴지도 몰라요. 하여간 언제나 그런 날은, 주차장에 들어가 차에 앉으면, 즉 사람들이랑 격리되는 순간을 맞으면 벌써 집에 도착한 듯한 안도감을 느끼곤 하죠. 차가 많이 막혀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 한 없이 길어져도, 일단은 하루에도 여덟, 아홉, 때로는 열 시간 넘게 붙어 있는 사람들이랑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은 대체 얼마나 살만한 공간으로 바뀌는지… 거기에 음악만 틀어 놓고 있으면 뭐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생각할 때도 많구요.

그러나 그렇게 살만한 공간으로 바뀐 이 세상, 그러니까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공기에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빠져 있는게 문제에요. 이를테면, 오늘 같은 금요일 오후, 별 약속 없이 퇴근하는데 친구가 전화를 해서 술이라도 먹자고 하거나, 아니면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지하철에서 오랫동안 못 만났던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으러 간다거나… 하는 일이 지금 여기, 제가 있는 곳에서는 영영 벌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겠죠. 일단 아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이곳에서는 사람과의 접촉이 우연히 이루어질 확률이 거의 없어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차에 몸을 담고 혼자 운전해서 회사로, 회사에서 몇 시간 일하고 또 집으로 혼자 운전해서 다시 집… 가끔 수퍼마켓에 들르거나 운동을 하러 학교 체육관에 가지만 거기에서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될 사람들 역시 우연이 조장하지 않아도 언제나 만나왔던, 또 앞으로도 만나게 될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말 우연히 만날 사람들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죠.

사실 이러한 삶은 굉장히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것이기는 해요. 언제나 똑같은 삶의 패턴이 정해져 있거든요. 왜 예전에 스웨터를 손으로 짤 때 쓰는 기계에 넣는, 딱딱한 판지로 된 패턴카드와 같은 삶의 패턴카드가 몇 가지 정해져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그걸 약간씩 다른 것들로 바꿔 끼우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아침에 먹는 샌드위치에 땅콩 버터를 먼저 바르냐, 아니면 잼을 먼저 바르냐의 차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지 더 이상 샌드위치를 안 먹고 밥을 먹는 패턴을 3일에 한 번 정도 바꿔 넣어주는 건 아닐테니까요. 물론, 거기에 조금 더 무리를 한다면 딸기잼을 체리잼 내지는 다른 무엇으로 바꾸는 정도의 변화는 줄 수 있겠네요. 아,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 다만 너무 큰 병에 담긴 잼을 사면 질리는게 질릴때까지도 먹어야 되니까 항상 가장 작은 병에 담긴 것을 골라야만 하는 아픔이 있긴 하죠. 하여간 이렇게 무미건조한 삶은 결국 제가 동경하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큰 불만은 없긴 해요.

어쨌거나 그렇게 우연이라는 것이 저의 퇴근 이후 행동 패턴을 바꿀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섯시 쯤 주섬주섬 챙겨 퇴근을 하면서 장을 보고 들어 가기로 마음을 먹었죠. 오늘도 30분 정도 더 일했으면 좋았을 것을, 사람들이랑 부대끼기 싫어서 일찍 나왔는데, 다행히 차는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저는 에어콘을 트는 대신에 창문을 열었어요. 하루 종일 에어콘 바람 밑에 앉아 있노라면 온 몸이 뻣뻣해져서 견딜 수가 없거든요. 하여간 그렇게 창문을 열으니 뜨거운 공기가 숨을 턱, 하고 막을 정도로 뭉게뭉게 스며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우연이라는게 빠져 있다보니 그 맛이 조금 맹숭맹숭하더라구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45분 동안 Rent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을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면서, 음악이 너무 커서 혹시 놓치는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몰라 때때로 전화기를 뒤집어 보았지만, 언제나처럼 전지만 닳고 있을 뿐이었지요. 제 전화기는 같은 전지를 3년째 계속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정도는 충전하지 않아도 끄떡없는 것, 혹시 알고 계셨어요? 

 by bluexmas | 2007/07/14 14:26 |  | 트랙백 | 덧글(7)

 Commented by 잔야 at 2007/07/14 14:52 

전 핸드폰에 붙잡혀 사는게 너무나도 짜증나서, 전화고 문자고 전부다 무음으로 바꿔버렸는데, 응답속도가 점점 느려지니까 점점 사람들과의 연락이 뜸해지더라고요. (그래도 급한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전화하거나 연락을 해오게 된다는 것.)

저도 그래요… 친구처럼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관계가 아닌, 업무라던가 공부 때문에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장소에서 보게 되는 사람들은 자꾸 자꾸 보면 볼수록, 붙어 있으면 붙어있을수록 왠지 모르게 피곤해지는 느낌이예요… 매일 변화가 없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안정감이 크지만 반복으로 누적되는 정신적인 지루함도 큰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7/15 00:16 

아 얼마전에 친한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

너무 오랜만이라서 반가운 나머지 쉴새없이 얘기했거든요.

후에 선배가 이러더라구요. “너 되게 외로웠구나?” 완전 정답 T^T

근데 저 빨간건 뭐예요? ^^;; 예쁘다.

 Commented by Eiren at 2007/07/15 01:05 

저 빨간 건 설탕 담는 용기가 아닐까요? 옆에 커피잔-혹은 찻잔-이 있는 것으로 봐서..제 전화기도 일주일에 두 번 울리면 많이 울리는 편이라 일주일은 끄떡없이 갈 것 같습니다..;;;차가 있다는 것은 참 편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로운 일이기도 하지요;

 Commented by 보리 at 2007/07/15 13:15  

맞아요, 공감해요, 그 우연이라는 요소가 없는 생활의 맛없음이요. 그런데 또 들여다보면, 우연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는 해도 좋은 우연만 있기를 바라고, 좋은 우연이 생기게 하려면 감나무 아래서 입벌리고 누워있기만 해서는 안되고, 또 의지를 동반해서 행동을 하자니 그건 또 우연이 아닌것이 되는거고… 복잡해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7/15 14:13 

잔야님: 저는 아무래도 3년이 한계인 것 같아요. 같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 정신적인 피로함을 견뎌내는게… 가장 싫은 건 원하지 않으면서도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침범 당하는 것이죠.

핑크님: 외로움은 아무래도 인류의 최고의 적이면서 친구인 것 같아요. 가끔 그렇게 사람들하고 정신없이 얘기하고 나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 않나요? 안 그러면 다행이구요. 저 빨간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Eiren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설탕 내지는 소금통일거에요. 옛날옛적에 브런치를 먹었던 소호의 어느 식당이었을거에요.

Eiren님: 여기는 차가 없으면 살지 못하니까요. 저는 이제 학생도 아니고 해서 기숙사에 살 수도 없구요. 운전하는 시간이 가장 마음 놓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서, 저는 오히려 그걸 즐긴답니다.

비공개님: 잘 다녀오셨나요? 역시 삼성 전화기가 좋아요. 배터리도 빨리 안 닳고…

보리님: 사는데 바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 너무 재미없죠. 상상의 나래를 펼치세요^^

 Commented at 2007/07/16 14: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7/17 12:55 

비공개님: 요즘 저에게는 사실 그게 ‘거의’ 유일하다싶은 낙이라서요. ‘일종’ 의 딱지를 붙일만한 여력조차 별로 없답니다 -_-;;; 삶이 그저 침묵의 블랙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