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20기본 요리만 제대로 배워라! 요리, 다 된다

퇴근 후 교통 체증이 풀리기까지의 시간을 알차게 써 보고자 사무실 이웃 건물에 새로 문을 연 Pub에 가 보았습니다. 사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그나마 드문드문 하던 외식도 거의 안 하는데다가 주중에 술, 그것도 맥주는 더더욱 마시지 않지만 이 새로 생긴 Pub이 스스로를 Gastropub이라 표방하며 Pub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에다 일반 pub의 음식보다는 약간 고급스러운 것들을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해서 저의 호기심을 발동, 한 번쯤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물론 직업 때문인지 웹사이트를 둘러보고 인테리어가 제 취향인 것 같아서 가보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법 다양한 종류의 생맥주(벨기에산 Chimay같이 시골동네에서는 생맥주로 맛보기 어렵다는 것들까지)와 그 맛을 보장해준다는 냉장 및 펌프 시스템이 아예 맥주를 끊은 저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차피 저녁 시간이고 혼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전체를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습니다.

밖에서 본 모습. 길 건너가서 찍어야 되는데 귀찮아서 말았습니다. 사실, 원래의 건물 디자인이 이런 분위기의 인테리어와는 맞지 않아서 그다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앞마당(그냥 Patio라고 하죠^^;;;)이 넓어서 요즘 같은 때 손님이 많이 꼬이는 분위기입니다. 내부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좁아서, 일단 이렇게 좁은 공간에 Pub같은 분위기를 내는게 가능할까, 라는 회의가 바로 들게금 만들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우리 bar를 그냥 bar라고 부르는 것은 과소평가 understatement야~’라고 울부짖는 꼬라지가 오히려 과대평가 overstatement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디자인이나 각종 유리잔의 배열 등등은 마음에 들었지만 일단 생각보다 너무 좁았습니다. 단, 비싼 석재(제가 아직 석재는 별로 다뤄보질 않아서 무슨 종류인지는 모르겠더라구요)로 된 바 상판만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질감이 뭐랄까, 석재면서도 폭신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벨기에의 수도원에서 통제된 생활로 주님께 한발짝 더 다가가려 고생하신다는 수사님들이 빚으신다는 Chimay를 한 잔 시켰습니다. 양이…너무 적어서 일단 실망이었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생각보다 차갑지 않아서 또 실망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 처럼 바 위에 거대한 생맥주 통 보관 공간이 있고, 아마 완벽한 냉장이 되어서 생맥주의 맛을 보존하고 최적온도를 유지할텐데, 일단 제가 좋아하는 온도보다는 훨씬 미지근했습니다. 메뉴는 제가 좋아하는 활자와 깔끔한 레이아웃으로 제 취향이었지만 pub 전체의 컨셉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들어가 보고서야 어쩌면 음식들도 컨셉과 맞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먹어보지 않았으므로 모든 언급은 보류하겠습니다).

맥주를 두 모금 마시고 2층에 올라갔습니다. 일단 빨간색이 중심색인데, 어느 정도 생기는 가지고 있지만 지나치게 들뜨지 않는 빨간색을 써서 색 자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상당부분 빨간색이 칠해진 재료가 나무라는데 기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무처럼 결이 없이 표면이 매끈하거나 재료의 크기 자체가 커서 이음매가 잘 드러나지 않는 마감재(그냥 콘트리트라던가 금속판때기 등등…)에 이 색을 칠했으면 훨씬 더 차가운 분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구석구석에 테이블을 마련해놨지만, 버리는 공간에 구색 맞추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 같으면 앉고 싶지 않을거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2층에는 단체 손님을 위한 자리와 부엌이 자리잡고 있는데, 역시 좁습니다.

화장실은… 거울을 찍다보니 본의 아니게 제가 찍혔는데, 거울은 특색있었지만 그렇게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웃기는게 화장실이 그렇게 넓지 않아서 문이 밖으로 열리는데,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볼일보다가 문이 열리면 아낌없이 보여줘야만 하는 경사를 겪게 됩니다.

역시 구석의 단체 손님용 자린데, 의자가 색은 맞지만 디자인은 컨셉과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외 구석구석 버려진 공간들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자리들.

다시 1층으로 내려옵니다. 거대한 맥주 냉장고… 바에 앉으면 바로 머리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긴 복도식의 1층 공간은 테이블과 바를 놓고 그 사이에 사람들을 수용하기까지는 좀 버겁다는 느낌이 들만큼 좁고 깁니다. 하여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남은 맥주를 마저 비우고 문을 나섰습니다. 이미 교통 체증이 풀려 있어서 시원하게 운전을 하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생각하면 할 수록 이 식당은 뭔가 전체적인 컨셉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Pub이 주는 공간감을 손님에게 제공하기에 전체 공간이 너무 좁습니다. 저는 뭐랄까, Pub이라고 하면 적당히 왁짜지껄하면서도 너무 복작거리지는 않고, 공간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도 당구도 치고 다트도 던지는 그런 느슨한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개업초기인 것을 감안해도 일단 그냥 복작거리기만 하고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공간의 물리적인 크기가 불러올 한계를 감안했을때 Pub을 표방한다는 얘기는 안 해도 나을 뻔 해 보였습니다.

또한 인테리어는 깔끔하면서도 hip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화장실 거울이나 각종 소품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약간 부조화스러운 느낌이면서 또 그렇게 깔끔하게 떨어지는 않아 보였습니다(테두리가 들쭉날쭉 요란스러운 화장실 거울과 벽에 걸려있는 칠판의 이미지는 너무 상반되는 것이 아닐까요?). 거기에 메뉴는…안 먹어 봤으니 입 닥칠랍니다.

오랜만에 뭔가 보러 갔다와서 생각이 많은 관계로 글의 두서가 없어지는데, 사실 이 식당은 아틀란타에 꽤 많은 소위 잘 나간다는 쿨한 식당들을 보유하고 있는 셰프 겸 사업가(내지는 셰프와 사업가? 귀찮아서 안 찾아 봤습니다)가 새로 문을 연 것입니다. 사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외식에 별 미련이 없는 사람이라 다른 곳에도 거의 가보지 않았지만 마케팅이나 어쩔 수 없는 직업병으로 둘러본 디자인들을 보면 음식보다는 이미지메이킹이 우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어쨌든 이 방문기는 음식을 먹어 보지 않았으므로 약간은 미완성격이니, 다음에 음식을 먹어본 후에 보충을 할 생각입니다.

 by bluexmas | 2007/06/22 13:17 | Tast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6/22 20:52 

왠지 pub이 아니라 맥주 회사 같아요…

단체 손님용 자리는 회의실 ㅋㅋ

 Commented by 보리 at 2007/06/23 05:53  

시원하지 않은 맥주는 정말… kill joy.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23 14:25 

핑크님: 얘기 듣고 보니까 정말 그런 느낌도 있어요. 하여간 과대 광고의 느낌이 많이 들었지요~

보리님: 저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찬 맥주가 좋은데 별로였어요. 그나저나 GRE에 killjoy라는 단어 나오는거 아시죠? 저는 거기에서 따온 건 아니지만.

 Commented by blackout at 2007/06/25 15:50 

이거 은근히 얼굴 공개인가요?

 Commented at 2007/06/26 05: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26 12:05 

blackout님: 아름다운 거울을 사진에 담으려다 보니 부득이하게 제 얼굴이 같이 나오는 불상사가 발생했네요. 그러나 사진이 어둠침침하고 리사이즈가 되어 있어서 다운받아서 오토레벨로 밝기를 조정한 다음 확대해서 보지 않는 이상은 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식별하시기는 어려우실텐데, 그런 수고를 겪지 마시고 미국 내에서라면 1-800-FACE-OFF로 전화하셔서 소비자상담을 받아보셔요. 늘 그렇지만 영어는 1번, 스페인어는 2번입니다요(Se Habla Espanol…-_-;;;).

비공개님: 저도 올릴까 말까 망설였다니까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