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nda Williams – Are You Alright?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치통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주말에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건지, 어제부터 왼쪽 윗 잇몸이 붓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불편할 정도로 땡땡 부어 올랐더라구요. 지난 주에 이래저래 저조한 일들이 많아서 이번 주는 좀 마음을 다져먹고 시작하려고 ‘비교적’ 일찍 일어났는데(사실 지난 주에 매일 아홉시 반 출근을 해서 저 자신이 무척 미웠습니다…-_-;;), 습기가 많고 흐린 날씨에 월요일의 전형적인 교통체증까지 겹쳐, 정말 치통이 금상첨화처럼 느껴지는 그런 아침이었지요.

이번에 부어오른 잇몸과 거기에 달려 있는 어금니는 사실 좀 사연이 있는 녀석들이에요. 그러니까 딱 10년 전(사실은 10년 하고도 2개월 전), 저는 군대에 있었고 막 상병으로 진급하기 직전이었는데 그 해(1997년)초 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던 바로 이 어금니가 그때쯤에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상태였죠. 딱 지금 이렇게 부어오른 것처럼 잇몸이 부어올랐고 이도 굉장히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자는 날도 가끔 있었습니다. 뭐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대 치과는 사실 안 가는게 더 나은 데라서, 저는 아마 1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 이렇게 썩어 들어가는 어금니와 터질듯한 잇몸으로 버텨야만 했죠. 4월이면 진급이고 당연히 휴가를 나갈거라고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제가 진급할 때 부터 강화된 진급시험을 본다고 해서 또 태권도에 총검술에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게다가 저는 초등학교 때 3,4년 태권도를 해서 단증이 있었는데도 ‘너같은 비만이 태권도를 했으리 만무하니 이 단증은 가짜’ 라고 알아서 단정짓고 인정도 안 해주는 바람에 태권도는 또 다시 얼마를 했는지… 아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군요. 역시 군대는 개인 역사의 바닥을 치는 기간이라 이야기 보따리는 끝도 없이 터집니다.

하여간, 결국 그렇게 휴가를 나온 날 즉시 치과를 가니까, 여의사 선생님께서 제 입을 벌려 놓으시고는 한참을 불쌍한 듯 들여다 보시더라구요. 이런 이로 어떻게 살았냐고… 그래서 열흘에 걸친 대공사로 40%를 고치고, 한 달인가 있다가 하루를 슬쩍 나와서 또 20%를, 그리고 8개월 후에 병장 휴가를 나와서 나머지 20%를 고쳤죠. 그리고 미국 오기 전이니까 5년쯤 전에 다시 한 번 전체를 고치고 온 건데, 다시 손 볼 때가 된 모양이었나봐요.

뭐 치아가 건강하면 복받은 거라던데, 저는 원래 지지리 복도 없는 인간이 치아쪽으로 가면 완전히 바닥에 바닥을 쳐서 치과에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에요. 어느 정도냐 하면 치과에서 치료하는 것 빼고는 다 해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니까… 충치 때우러 치과 가는 건 뭐 준비 운동에 불과했고, 군대 갔다 와서는 본격적으로 교정을 시작해서 향후 5년 동안 정말 엄청난 대공사를 해야만 했죠. 위의 사진은 오늘 치과에서 찍은 파노라만데 뭐 다들 바빠서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가운에 치과관련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파노라마가 뭘 말해주는지, 업종 종사자는 아실거에요. 하여간 너무 열심히 치과를 다니면서 온갖 것들을 다 해봐서 지금도 연견동의 모 서울 대학병원에 가면 제 파일이 백과사전 두께고 지난 10여년간 떠왔던 인상 impression이 옛날 석기시대 조개무덤만큼 쌓여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어쨌거나 운이 좋은건지, 회사 건물 같은 층에 치과가 있어서 출근하자 마자 예약을 하러 갔더니 점심시간에 오라고 하더라구요. 미국에서 다른 병원은 몇 번 가 봤지만 치과는 처음인지라, 일하는 틈틈히 인터넷을 뒤져 영어 단어 공부를 좀 하고 갔죠. 그래야 상황이 어떤지 더 잘 설명할 수 있으니까… 진단을 위해 엑스레이를 몇 장 찍었는데, 그 10년 전에 했던 어금니가 갈라진 것 같다고, 자기는 일반치과의라 진단하기 어려우니까 전문의를 찾아가라고 추천서와 연락처를 주더라구요. 그러면서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이를 살릴 확률보다 뽑고 임플랜트를 박아야 할 확률이 높다는데, 채 마흔, 아니 서른 꺾이기도 전에 영구치를 잃을지도 모를 상황이 처했다고 생각하니까 참 슬퍼지더라구요. 정말이지 군대 제대하고 교정 시작하고 나서는 정말 열심히 치아 관리에 힘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플랜트라니… 전 정말 복이라곤 전생에 바닥까지 닥닥 긁어서 써 먹어 버리고 간신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나봐요.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예약을 하자 마자 부기가 가라앉아서 지금은 기분이 편안하지만, 내일 모레 전문의를 만나서 진단을 받으면 또 어떤 얘기를 들을까 사실 걱정이 되더라구요.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겪어 본 고통을 다시 겪는데 더 고통스러운 법이라서, 이 지친 몸을 다시 또 치과 의자에 누이고 눈을 가린채 그 징그러운 드릴 돌아가는 소리와 신경이 자극되는 야릇한 느낌으로 나를 생고문해야 한다니 기분이 정말 형언할 수 없이 유쾌했어요, 하루 종일… 10년간 열심히 들락거리느라 친해진 치과 교수님들께 오늘 받은 이 따끈따끈한 엑스레이 사진을 보내 조언을 좀 구할 생각이에요. 정말 임플랜트를 해야 한다면 서울에 가서 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니까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왜 이에 금이 갔을까, 딱딱한 건 잘 안 먹는 편인데, 라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매일 간식으로 먹는 아몬드가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라구요. 뭐 억지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가는 날까지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살고 싶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관리해도 안 되는게 있는 모양이에요. 나이 먹으면 늙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니까 서글퍼지던데, 만약 정말 임플랜트를 하게 되면 또 집에 혼자 돌아와서 죽 끓여 먹어야 되는 걸까, 그럼 쌀은 전날 미리 불려놔야 될텐데… 라고 생각하니까 더 서글퍼지더라구요. 아, 요즘은 왜 이럴까요… 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처럼 밀려오네요.

 by bluexmas | 2007/06/12 12:10 | Life | 트랙백 | 덧글(13)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12 12:29 

저도 이빨 박아야 되는데 흑흑 돈은 ㅠ_ㅠ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12 12:29 

쌀 불리.. ㅠ_ㅠ 멀리서나마 안타까운 마음 보내드릴게요. 토닥토닥.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12 12:33 

아… 심히 우울합니다 요즘…흐흐. 정말 치과는 돈 나가는게 무서워서, 저는 그랜저를 얼굴에 갈아 붙였다고…

 Commented at 2007/06/12 12: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12 12:59 

치과 가는거 이제는 별로 무섭지는 않아요. 정말로 이를 뽑아야 한다면 뭐…양지바른 곳이나 찾아서 묻어주려구요. 저도 미국에서는 치과를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웬만하면 살리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에요.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12 13:10 

전 치과 그래도 너무 무서운데 ㅠ_ㅠ 돈도 무섭고 아픈 것도 무섭고 ㅠ_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12 13:13 

더 자라세요 카렌 어린이^^

 Commented by ppink at 2007/06/12 13:35 

마지막으로 치과를 갔던게 대학교 졸업무렵이었나봐요.

담당선생님이 너~~무 잘생긴거에요 +.+

어린맘에 그 분은 내운명이라 외치면서…

치료끝날때까지 사적인 감정을 담뿍 안은채..

아주 열심히 다녔었어요…

치료마지막날..간호언니의 말 한마디에 그날 술을 펐었다지요

“선생님..사모님 전화와있습니다~”

 Commented by 보리 at 2007/06/12 13:50 

세상에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어도, 아무리 칫솔질 자주해도 충치 생기는 인간이랑 칫솔질 안해도 튼튼한 인간의 씨는 따로 있는 듯 합니다. 저 또한 지금까지 이와 턱에 그랜저 한대 정도는 갈아바른 듯하고 임플랜트 이야기도 듣습니다… -_-

 Commented by basic at 2007/06/12 14:27 

절언- 저도 요즘 왠지 이빨이 썩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 잡혀 있어요. 치과에 대한 공포심은 이상하리만치 없지만(1년 반 동안 교정한 경험;) 왠지 여기서는 가기 싫어요.;;;;; 영어도 못 알아들을 것 같고. 끄악. 가격도 비싸겠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13 11:29 

ppink님: 치과 치료 후 술은 정말 안 좋은데, 충격이 크셨나 봐요^^

보리님: 각종 의학적 소견들을 수합해 본 결과, 임플란트만이 살 길이라는 결론을얻었습니다…. 아직도 교정기를 끼고 있어서(밤에만) 문제가 좀 골치 아플 듯 해요.

basic님: 1년에 한 번씩 치과 가는데 작년에는 몰랐던 것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요.

 Commented by 해구 at 2007/07/04 12:19  

저도 지금 아반떼xd하나 부었습니다.

교정치료에 신경치료 발치 임플란트 등등…

어금니가 썩어서 새끼손톱만큼 남았는데 뽑느라 고생좀 했죠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7/04 12:33 

앗, 고생이 많으셨군요… 양치질을 잘 해도 그래서 저도 아주 속상하답니다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