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tail of Oblivious Monday

아침에 일어나니까 아주 기분이 끈적끈적하더라구요. 어제 밤에 방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내내 그랬어요. 2층은 바람이 안 통하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냥 그런 때가 온 것일 수도 있겠죠. 사실은 골치 아픈 일이 있었어요. 왜 골치 아픈지도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고 그런 일들… 하여간 얼른 1층으로 내려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는 병들을 꺼내고 목 뒤의 밸브를 열어서 피를 받았어요. 기분이 끈적끈적해서 그런지 피도 끈적끈적해서 담는데 보통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구요.

토요일 아침에, 오랜만에 먹어볼까 해서 우유를 부어뒀던 시리얼이 생각나서, 그걸 빵 대신 아침으로 먹었는데, 개밥의 개밥처럼 완전 불어서 먹다가 토할 뻔했죠. 그러나 아까워서라도 다 먹었어요, 꿀꺽. 그리고는 일상의 의식처럼 치뤄지는 면도와 샤워, 드라이와 각종 자질구레한 것들을 해치우고는 차에 올랐죠. 몰랐는데 핸드폰마저 주말 내내 꺼놨었더라구요. 2월부터 집 전화는 계속 꺼져있어요. 오는 전화라고 해봤자 다 거기서 거기니까, 아예 전화벨 소리가 거슬려서 뽑아 놓은 거죠. 거기에다가 핸드폰마저 꺼져 있으니 아버지가 음성을 남기셨더라구요. 뭐 그것도 늘 똑같은 거죠.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제가 이렇게 운전을 하면서 집에 전화를 하는게 똑같은 거고, 또 그 통화 속에서 오고 가는 얘기가 똑같은거죠. 네, 지겨운데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똑같은 통화를 똑같이 마치고 나서 친구 S와 통화한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역시 오늘도 또 안 받더군요. 핸드폰 번호는 맨날 까먹어요. 두 달에 한 번 전화하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집 아니면 다른 곳에서는 전화하는 걸 싫어해서 운전하면서 전화를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차가 이렇게 막히는 동안에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전화통화라는 것은 전화를 하면서 알게 됐죠. 하여간 S보다 더 통화한지 오래된 L-얘는 1월 이후에 통화를 못 한 것 같은데- 에게 전화를 했죠. 아니나 다를까 주말 낮에 아들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서 맨날 전화 못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통화를 꽤 했는데 한 절반은 감이 나빠서 알아듣질 못했어요. 그냥 열심히 응, 응, 그러긴 했는데 어찌나 답답한지…

그러다가 중간 기착점, 쉬어가는 곳인 커피 가게에 들러 아침에 뽑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온 피만큼의 커피를 사들로 다시 회사로 향했죠. 월요일엔 제가 아니라 카페인이 일을 하는거에요. 저의 정수는 차가운 냉장고, 사람들이 다 똑같은 거 사려고 찾아봤더니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고 말하는 그 냉장고에서 하루 더 시원하게 휴식을 취하는거죠.

사실은 오늘도 별로 할 일은 없었어요. 금요일에 너무 열심히 일해서 오늘은 별로… 그래서 간만에 마음도 좀 다잡을 겸 한 달에 두 번만 입는 정장을 입고 갔죠. 지난주에는 계속 모델을 만들어서, 참 정장 입기가 어려웠거든요. 간만에 갓 드라이한 정장을 입고 갔는데 그날 하루 종일 사포로 나무를 다듬어서 옷에 하얗게…참고로 드라이하는데는 $7.50, 비싸죠? 하여간 오늘은 두바이의 협력업체에 보낼 파일들을 계속 Converting 했는데 일은 컴퓨터가 하고 저는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까 앉아서 열심히 일하는 모양새를 잡고 낙서 및 다이어리 정리를 했죠. 그러다보니 5월에는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더라구요. 생각을 더듬어 보니까 저도 5월엔 뭘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게, 5월 전체가 통째로 유체이탈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찜찜함이란…

하여간 간만에 옷도 잘 입고 갔는데 기분은 계속 그냥 그래서 옷 잘 입고 간게 아깝다고 생각했죠. Cuffs까지 해야되는 셔츠를 입고 가면 정말 불편하거든요. 또 이렇게 입고 일 끝나고 운동하러 가서 다 벗고 운동하고 또 다시 입는게 대체 얼마나 귀찮은데요. 어쨌거나 그렇게 앉아 있다가 퇴근했어요. 1시간 늦게 퇴근해서 30분 더 일했으니까… 오늘도 밥 값 제대로 못한 건가? 따지고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에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어차피 아무도 안 하겠다고 다 발뺌하고 핑게대서 결국 그런거 잘 못하는 제가 한 거니까. 자기들 하기 싫은 일 해준다는데 뭐, 그 정도는 눈감아 주겠죠.

요즘 계속 야근해서 운동을 제대로 못했더니 참 짜증이 났었죠. 정해진대로 다 해야 되는데, 꼭 조금씩 힘들다고 자질구레한거 하나씩 건너 뛰었었거든요. 난 내가 그러는게 너무 싫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 악물고 달리기부터 웨이트를 지나 마지막 턱걸이까지 하나도 안 빼먹고 다 했죠. 그러니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구요.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늘 먹는 개밥맛의 샌드위치를 먹었죠. 이게 몇 달째지? 석 달째에요, 운동하고 이 말도 안되는 저녁을 먹어온게… 지금은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요. 원래 맛 같은 건 사실 상관도 안 하지만, 적어도 주중에는…배만 안고프면 되지 뭐, 완전 피난민 마인드. 제가 원래 지독하게 엄하게 키워져서 마인드가 좀 그래요. 언제나 어려운 시절을 상기하며 살았어야만 했죠. 그때도 뭐 충분히 어려웠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서 토마토랑 수박을 미친듯이 먹었죠.이제 여름이라서 그런지, 운동을 하고 나면 너무 갈증이 심해요. 마지막 마무리 달리기를 할 때면 느껴져요. 아, 이제 내 몸에 수분이 거의 남지 않았구나, 라구요… 진짜 마지막 2분 정도에는 막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사람 많은 체육관이라서 얌전하게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되죠.

하여간, 사람들이랑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다고 해도 가끔 실체가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바람처럼 지나왔다가 또 지나가는 걸 느끼곤 해요. 실체가 없다는 얘기는,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단지 다들 너무 멀어서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거죠. 요즘은 부모님도 실제로 있는지 못 느낄때가 많아요. 알아요, 있죠… 그러나 그 모든 의사소통이 비물리적인 것이면, 그때는 기분이 이상해진다니까요. 의심스러우면 해보시면 될거에요. 제가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런 농담도 했었다니까요. 모두 다 ‘메시지 송신센터’ 에서 나오고 실체는 없는거라고. 그런데 그 분은 그걸 다른 쪽으로 이해하셨는지 갑자기 심각한 얘기를 꺼내시려고 해서 제가 많이 당황했었죠. 그래서 다시는 언급을 안 했어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냐면, 가끔 이렇게 비물리적인 의사소통은 결국 핵심보다는 변죽을 울리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몇 번 대화가 오고가면 그때는 자꾸 말꼬리를 잡고만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우리는 다 서로 실체를 모르는 타인들이잖아요. 그런데 서로 그렇게까지 해야 될 필요가 있는 걸까요? 다들 아침에 일어나서 그 일상의 지긋지긋함에 진저리치면서도 이 악물고 밖에 나가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맞닥드리는 물리적인 실체들하고 싸우기만도 힘들잖아요, 벅차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저는 도저히… 거기에다가 저는 사람들이랑 싸우기도 싫고, 누군가 미워하기는 더더욱 싫어요. 저는 이미 2년 전에 누군가 미워할 에너지를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내면서, 싸우기 위한 상대와는 절대 마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모든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누구든 미워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미워하면 내가 힘들고 또 남을 미워하는 나를 더 미워하게 되니까, 더 이상 그러지 않을거에요. 그러니까 알아서 하세요. 저를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셔도 좋아요. 저 미워하는 사람, 꽤 되거든요. 저는 평생의 적도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누군가 저를 미워한다고 해도 이제는 옛날처럼 그렇게 두렵지도 않아요. 그래봐야 누구도 제 평생의 적만큼 저를 미워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그걸 견디면서도 사는데 뭐, 타인의 증오가 무서워봐야 하루 밤 잠 설치는 정도겠죠. 그럼 그 다음날에는 다른 날보다 더 많이 피를 뽑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다음에 나머지를 더 독한 커피로 채우면 아무도 못 알아차릴테니까 괜찮아요. 여기 저한테 그렇게 신경 써 주는 사람 없고 나머지 사람들은 제가 누군지 본 적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를 또 떼서 망각의 강에 흘려 보냅니다. 그말인 즉슨, 내일 아침이면 제가 어제 오늘 화 났었던 사실조차 잊고 살거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저의 미움을 혹 사셨을거라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거 걱정하시잖아요. 다 알아요. 저는 저의 이 보잘것 없는, 그러나 만드는데 너무나도 오래 걸린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미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거에요. 그러니까 오늘 밤부터는 걱정하지 마세요.

자, 그럼 저는 오늘 하루를 접으러 갑니다. 참! 그 전에 내일 입을 셔츠 다림질하러 1층에 내려가야 돼요. 요즘 별로 안 게으른데 셔츠 다림질하는건 왜 그렇게 귀찮은지 모르겠어요.

 by bluexmas | 2007/06/05 12:39 |  | 덧글(9)

 Commented at 2007/06/05 13: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xmaskid at 2007/06/05 13:18 

피는 왜???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5 13:46 

비공개님: 젊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요즘 삶이 애정으로 윤택해지셔서 블로그가 너무 빛나니까 가서 덧글을 남길수가 없었어요. 눈부셔서… 그러나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xmaskid님: 피 말고 다량으로 뽑을게 없어서요. 눈물? 너무 소량… 땀? 그건 또 너무 피트니스 분위기라서… 그러다보니 피로 낙찰.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5 14:38 

하지만 저 교묘한 각도는!

 Commented at 2007/06/05 17: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asic at 2007/06/06 05:27 

현실에 적응되어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몇 광년씩 혼자 떨어져있는 소외감. 그런 느낌일까요? 저는 가끔 그래요.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어릴 때는. 나는 지금 혼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가 있는 거고 실제의 나는 아주 늙은 노인일꺼야. 라는 생각을 하곤 했죠… (어릴 때부터 혼자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Commented by ppink at 2007/06/06 12:14 

넥타이 색깔 좋아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6 12:19 

카렌님: 저 교묘한 각도는 보온 커피컵 위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자동으로 찍으면 나오는 것이랍니다. 어제 좀 한가해서 장난을 많이 쳤죠…

비공개 1님: 며칠 전에 어머니랑 통화해서 그랬죠. “올해도 벌써 6월이니까 올해 안에는 이미 물 건너 간거네?” ‘싱글 여성’ 에게는 얼마든지 좋지만, 동성은 사양할래요-_-;;;

basic님: 저는 몇 광년은 아니고 뭐 7191마일(아틀란타-서울 간 공식 마일리지)정도 될까요?

비공개 2님: 그 요정이 아직도 그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고 있군요. 몇 년 전에 저도 엄청 당했….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6 12:21 

ppink님: 님의 블로그에 있는 꽃 색하고 참 신통하게 비슷하네요^^

들러주셔서 감사하고 종종 뵐께요~

참, 저 넥타이는 세일할때 $15주고 산 싸구려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