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ed Up(2006)-코미디의 터치를 입은 성장 드라마
포스터에서 풍기는 인상조차 왠지 찌질해보이는, 스물 세살 먹은 Ben Stone(Seth Rogen 분)은 캐나다에서 LA(정확하게는 Santa Monica)로 거주지를 옮겨 친구들과 무위도식에 가까운 생활을 합니다. 고등학교때 우편 배달 트럭에 치인 덕분에 받은 보상금으로 근근히 삶을 이어가면서 말도 안되는 인터넷 사이트 사업(알고보니 이미 같은 아이디어의 사이트가 존재하는…)을 구상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백수에 대마초나 피워대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 찌질한 삶을 사는 백수가 어느날 친구들과 클럽에 놀러갔다가 비교적 잘 나가는 미녀 연예방송 리포터 Alison(Katherine Heigl 분)을 만나게 되고, 많은 미국 선남선녀들이 그러하듯 이들도 술을 진탕 먹고는 One Night Stand에 돌입하게 됩니다. 결과는? 당연히 임신인 것이지요. 그래야 영화가 영화가 될테니까…
(여기까지 쓰고 인터넷을 한참 뒤져서 캘리포니아에서 낙태가 불법인지 합법인지 알아보려 했는데, 역시 법률 용어들은 교묘하게 틀어놔서 이해가 잘 안가지만, Wikipedia를 찾아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경우-산모의 건강, 강간 등등…-에는 합법이고 단지 요청에 의해서는 주마다 다르다, 고 나오는군요. 하여간 이 영화를 말하는데 아주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일단 통과)
’40 Year Old Virgin(우리나라에서는 ‘마흔 될때까지 한 번도 못해본 남자’ 라는 제목으로 상영했던가요? 그것보다는 아마 최근에 고속도로에서 판매하는 말도 안되는 테입들로 이름을 다시 팔아먹고 있는 개그맨 김용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해서 더 알려졌을 듯…고국사정에 어두워서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의 각본을 쓰고 감독한 Judd Apatow가 역시 각본과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코미디라고 말을 하지만 제가 은근히 좋아하는, Will Farrell 주연의 각종 말도 안되는 미국 코미디물 화장실 유머를 표방하는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 개념 없이 사는 남자 주인공, 또 이제 막 커리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시기에 덜컥 임신을 해버린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 원인은 사랑없이 이뤄진 섹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서로를 잘 알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보자’ 라는 순진한 제안을 서로에게 하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에이 재수없게 임신이라니 얼른 낙태를(옛날에 최진실과 이병헌이 가난한 커플로 나온 드라마에서, 두 사람은 감당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낙태를 선택했던게 기억이 나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꼭 그래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이라는 설정이라면 애초에 영화가 영화가 안 되었겠지만 어쨌거나 영화는 그렇게 두 사람이 겪는 각종 변화와 갈등을 촌철살인의 코미디 터치를 엮어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가볍지만 너무 심하게 가볍지도 않은 터치의 코미디는 이 영화가 그 많고 많은, 너무나 많아서 때로는 역겨운 미국의 전형적이고 또 계몽적인 가족주의 영화의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길을 잘 닦아주니 영화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등장 인물들이 가족을 등한시하고 각종 사건사고들을 싸지르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재미 없어지니까 성경에 나오는 탕아처럼 집으로, 그걸 또 가족들은 말없이 받아주면서 다 같이 끌어안고 ‘아 우리는 너무 서로를 사랑해…’ 뭐 이러는 영화들… 그게 아니꼽다는게 아니라 실제 삶에서는 용서가 그리 쉽지 않은 건데도 영화에서는 너무 쉬운 것처럼 비춰진다는게 문제인 것이죠).
영화에 대한 지식도, 좋은 영화를 판별할 수 있는 혜안도 없는 저인지라 언제나 영화를 보기 전에 Rotten Tomatoes와 같은 사이트들을 뒤져보게 되는데, 사실 이 영화는 올해 상영된 영화중 가장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해서 보게 된 것입니다. 보고 난 뒤의 느낌은, 뭐랄까,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면서 찬사를 보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금까지 보면서 좋다고 생각했던 그 어느 영화들보다도 뒤지지 않는…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랑 없는 섹스, 생각 없는 삶, 결혼한 사람들의 갈등과 성 차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부재와 같은, 사실은 무거운 주제를 영화 가득가득 담았으면서도 그리 무겁지 않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없는 코미디도 아니고, 또 어쨌거나 두 시간도 넘도록 보여주지만 긴장감도 잃지 않는, 그리고 거기에 무려 감동(마지막의 출산 장면에서 정말 눈물이 찔끔, 나오더군요)까지 선사하는 영화… 생각해보면 그런 영화가 흔치 않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이 영화는 보통 영화는 아닌 것 같고, 보고 집에 와서 어제 오늘, 또 글을 쓰는 지금까지 곱씹어 보면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뭐 그런 영화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에 계신 분들 시간 되면 극장에 보러 가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 by bluexmas | 2007/06/04 02:50 | Movi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