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의 4일 연휴(3)-삼겹살 구이와 된장찌개
역시 놀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불변의 진리는 정말 불변의 진리인 듯, 뭘 했는지도 모르게 4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가버렸네요. 역시 오늘 저녁도 폭식을 하여 키보드를 두들기기가 거북할 지경이지만, 그래도 포스팅은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어제는 그동안 너무 밥을 안 해먹은 것 같아서 간만에 제대로 밥을 해먹고자 부엌에서 시간을 좀 보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음식은 참 조리과정도 복잡하고 또 사진발도 안 받아서 몇 시간을 낑낑대고 부엌에서 허비해도 막상 밥 먹을때가 되면 밥상에 올려 놓을 반찬이 별로 없고, 사진을 찍어도 참 허무합니다.
어쨌든, 거사는 메뉴를 포스트잇에 적어서 찬장 문에 붙여 놓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보통 일요일 오후에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들을 몰아서 하는데, 4일씩 논다고 일요일에 안 하고 월요일 오후에 했습니다. 보통 이렇게 모든 반찬을 몰아서 만들고 집에 돌아오면 소금에 절여서 냉동실에 넣어둔 생선을 굽고(출근 전에 미리 꺼내서 냉장실에 넣어 놓지 않으면 못 먹죠T_T), 그동안 씻고 밥상을 차립니다. 그러면 대충 집에 도착해서 30분 내로 저녁을 먹을 수 있는거죠(운동을 하는 날은 샌드위치를 싸가서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먹기 때문에 저녁밥을 집에서 먹는 날은 화, 목요일 밖에 없습니다. 하여간 보통 저녁을 먹게 되는 시간은 일곱시 반).
언제나 혼자 먹는 음식을 만드는데 중요한 것은 질보다 시간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을 절약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이렇게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군요. 제일 중요한 건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건데, 도마랑 칼을 두 짝 준비해 놓고 고기와 야채를 한꺼번에 따로 준비하면 중간에 도마나 칼을 씻느라 시간과 노동력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물을 세 종류(도라지, 고사리, 무 나물) 만들었는데, 보통 말린 나물을 서너가지 사다가 돌려가면서 먹습니다. 다들 물에 하루 전에 불리거나, 고사리 같은 경우는 불리는 것도 모자라서 끓는 물에 10분 정도 삶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 번거롭습니다. 4일이나 노니까 한 번에 세가지를…
수퍼마켓에 갔는데 애호박을 발견해서 처음으로 호박전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두 개를 사서 한 개 반은 전을 만들고 나머지는 된장찌개로… 쌀을 씻어서 뜨물을 받아 찌개를 끓이고 밥을 안칩니다. 호박은 물기가 많아서 미리 소금을 뿌려서 무거운 걸로 눌러 물기를 뺐다가 계란과 밀가루+옥수수가루를 입혀 팬에 익혀줍니다. 덜익었을까봐 좀 오래 팬에 놔뒀더니 탔습니다.
하여간 이 모든 걸 다 만들고 나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더군요. 역시 우리나라 음식은 너무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는게 탈입니다. 알고보면 국제화가 잘 안 되는 이유도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일품요리로 만들 수 없어서인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고 들어와서 삼겹살을 구워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적당히 팬에 구워서 소금, 후추, 그리고 말린 바질 잎을 뿌려서 먹습니다. 역시 상을 차리고 나니 허무하지만, 사실 이렇게 나마 여러가지 반찬을 놓고 밥을 먹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생각해보니 제 생일에도 이렇게 반찬을 많이 차려 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만들기가 귀찮은 것은 둘째치고라도 많이 먹지를 않으니 굳이 여러가지 반찬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겠죠.
어제보다 비교적 절제가 깃든 저녁상을 물리고 후식으로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고 육류의 소화를 돕는다는 파인애플을 먹었는데, 얘는 껍데기를 벗겨 놓으니까 수줍음이 어찌나 심한지 극구 사진찍히기를 거부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 by bluexmas | 2007/05/30 13:12 | Taste | 트랙백 | 덧글(9)
미국 파인애플들은 개방적인 줄만 알았는데^-^ 정숙한 녀석도 있던 거로군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아. 배고파라.
비공개 덧글입니다.
그리고 미국 파인애플은, 때때로 가정교육을 잘 받은 덕에 예절과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놈들이 있어요. 덕분에 싸가지 없어서 곧 망할 것 같은 이 쌀나라에도 쥐#만한 희망이 늘 있는 것이겠죠. 저녀석도 사진찍는다니까 가뜩이나 노란게 완전히 샛노랗게 질리면서…
잔야님: 저거 다 저희집 텃밭에서 나온답니다. 쟤들하고 계란하고… 곧 젖송아지들이 자라면 우유도 신선하게~
는 아니구요-_-;;; 한국 수퍼가면 늘 있어요 종류별로… 우리나라에서 올 때 좀 사오시거나, 아니면 보내드릴까요? 하하. 메사추세츠 좀 시골동넨가 보네요.
보성녹차님: 저 사진은 사실 가식 연출 샷이랍니다. 사진찍으려고 이빨 안 나간 접시 몇 개 찾아서 막 담았거든요. 사실은 군대에서 쓰는 식판을 써서 설겆이를 줄이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제 자신이 비참해질 것 같아서 그것만은 자제하고 있죠.
그나저나 제 홈피에는 처음 들러주시는 것 같은데 종종 반갑고 종종 들러주세요^^
비공개 1님: 알고보니 트렌스젠더였는데 자신의 성 정체성이 알려질까봐 사진 촬영 거부한거라던데요?^^
가하님: 계란소세지는 뭐랄까 초등때의 빈티지 메뉴였죠. 고기보다는 밀가루가 더 많이 들어간 빨간 소세지를 계란에 입혀 지져서…요즘은 먹어봐도 그 맛이 안 나더라구요. 가하님 계란 진짜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닭 한 마리 키워보세요^^
basic님: 사실은 저희 부모님이 맞벌이를 제가 유치원다닐때부터 하셔서 약간 소년가장으로 자라난 듯한… 은 좀 과장이 심하고 아홉살때부터 라면 끓여먹는걸로 시작했으니 뭐 한 이십 몇 년? 저 럭셔리는 저에게도 아주 가끔 찾아온답니다. 이번처럼 4일 연휴나 되어야…
비공개 2님: 저는 최악일때는 참치캔에 깍두기로도 많이 먹었는데 그렇게 먹다보면 이렇게 부실하게 먹는 제 자신에 화가 나서 뭔가 하게 돼요. 저는 설겆이는 몰아서 하는데 보통 밥 먹는 순서가, 일단 밥을 공기에도 안 담고 밥통에서 바로 퍼 먹어가면서 반찬을 하나씩 꺼내서 식탁에 들고 가면서 먹는… 그래서 밥을 반은 먹어야 반찬을 먹는 뭐 그런거죠. 알고 보면 다들 불쌍한 Single Life 아니겠습니까…그러나 서로 기댈 어깨를 나눠 주지는 못하는 안타까운 그런 현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