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터널을 타고 향하는 주말
아침부터 정말 신나게 일하고 있었는데 다섯시 다 되어서 갑자기 디자인의 상당 부분이 바뀌는 바람에 마무리는 저조해진, 그렇고 그런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회사 다니기 시작한지 딱 2년이 된 시점(어제가 입사 2주년이었습니다)에서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고 있어서 뭐 진담 반 거짓말 반으로 일하는 재미를 느낀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설사 일하는 재미가 있다고 해서 몸이 안 피곤할 수는 없는 노릇, 과다 섭취 중인 카페인의 힘으로 처지는 근육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열심히 마우스질을 하고 있습니다. 과다한 마우스질로 오른팔이 왼팔보다 길고, 오른손이 왼손보다 크며,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이 왼손의 그것보다 길어진 것은 벌써 오래전의 얘기… 요즘은 아침에 출근하면 모니터를 켜고 컴퓨터에 전원이 들어오는 동안 두 컵의 얼음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왼쪽의 컵은 마시기 위한 물, 그리고 오른쪽의 그것은 과다한 마우스 클릭으로 열이 나는 손가락을 제때 식혀 물집이 잡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죠. 만약 제때 손가락을 식혀주지 못해 빠른 마우스질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회사에서는 해당 사원을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린 후 마우스질이 필요 없는 종이 나르기 및 재활용 쓰레기 분리 작업에 투입 시킨 다음, 신입사원 교육때 특별 투입, 재활을 거치게 한 후 다시 실전에 투입 시킵니다. 이 때 월급은 제대로 나오지만 눈치밥이 돈에 묻어 나와서 빠른 셈이 불가능(손가락 끝에 침을 많이 발라야 하니까)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도면 공장 생산직 근로자의 하루하루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그것처럼 단조롭고 피곤에 쩔은 것입니다. 게다가 세계 대전 전후의 시베리아나 미국의 사무실은 찬바람이 쌩쌩 분다는 점에서는 꽤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오늘도 마우스질하다말고 손에 입김을 계속 불어야만 했습니다. 4월 보스턴 개막전에서 손에 바람을 연신 불어 넣던 페드로처럼.
아, 야근의 고통으로 새까맣게 칠해진 어둠의 터널을 눈 감고 150마일로 달리는 와중에도 주말이 오긴 오네요. 과연 내일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내일은 모든 일을 다 끝내야만 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일해야 될지도 모르고 해서 집에 있는 쿠쿠 압력 밥솥을 들고 가서 저녁을 사무실에서 해 먹을 생각입니다. 다행히 지난 주말에 눈 감고 담근 깍두기가 먹을만 하더군요.
# by bluexmas | 2007/05/18 14:12 | Life | 트랙백 | 덧글(6)
네, 저 눈 감고 이것저것 잘 하는데, 제일 잘 하는건 눈 감고 블로그 포스팅 하기랍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저처럼 일 하시지 말고…
작년에는 주인님과 삭스경기장에 가서 몇 게임 정도 봤는데 올해는 아마도 tv앞을 지켜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저러나, 님은 braves 팬? 레드삭스 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