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GIF / 죽음처럼 깊은 잠
.뭐 늘 어느 금요일에나 TGIF라지만, 이번 주 금요일은 정말 Million Thanks God, It’s Friday입니다. 일단 월요일부터 너무 힘겨워서 정말 허덕거리면서 한 주를 보냈기도 했고, 또 지난 2주 동안 퇴근 10분 전에 떨어진 일들을 하느라 아홉시 다 되어서 퇴근했었거든요. 오늘은 정말 점심먹고 나서 부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제발… 아마 이번 주에도 다섯시 넘어서 “야, 그런데 이거 월요일까지 다 해야 되겠다.” 라면서 뭔가 툭 던져주고 퇴근했다면 아마 저는 나가는 걸 붙잡고 주먹을 날렸을지도(솔직히,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하루 종일 거의 아무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퇴근 직전에 ‘이거나 해라, 월요일까지’ 라면서 뭔가 틱 던져주고 나간다면, 신선과 족보를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말 이성을 찾기가 힘들듯… 아니면 저만 성질이 더러워서 그런건지…)…
…어니, 사실 솔직히 말하면 바닥에 주저앉아서 막 울었을 것 같습니다. “너, 우리 팀에서 나만 가족 없는 싱글이라고 이렇게 일 막 시키는거지…” 라구요. 저보다 무려 여덟 살 어린 막내도 다음 주에 결혼(예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죠)하고 나머지는 다 기혼자라서, 가족이 최고라고 그야말로 최고의 핑겟거리가 되는 이 나라에서 저는 가뜩이나 낙동강 오리알 신센데 핑게 댈 건덕지조차 없는 셈입니다. 서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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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주말에 할 일이 있어서 시간을 아끼려고 간단히 장을 본 탓에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저녁을 먹고는 소파에 누워서 아침까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잠깐 자다가 일어나서 뭔가 할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더군요. 중간에 깨서 터덜터덜 2층에 올라와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반, 입고 있는 티셔츠가 무거웠지만 갈아입지도 못했습니다. 건축사 면허 시험을 위한 크레딧을 따려고 시내에 있는 호텔 현장 견학을 갔다 왔는데 그래서 더 피곤했는지도 모르죠. 하여간, 오랜만에 맛보는 단잠이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깊은 잠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죽음’처럼’ 깊은, 이 아니고, ‘만큼’ 깊은 잠이 되었겠죠. 언제나 꿈을 꾸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야, 어제는 정말 잘 잤다’ 라는 느낌이 들 만큼 깊이 잠든 건 정말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뭐 저라는 인간이 원래 그렇다는 걸 아니까 별 불평거리는 없지만.
어쨌거나 어제도 꿈을 꾸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하지만 3주 전인가, 어제처럼 저녁을 먹자마자 쓰러져 잤던 날, 꿈을 꾼 기억이 생생해서 요즘은 거의 방치해둔채 있는 싸이 홈피에 몇 자 적어놨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목련 꽃송이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꿈을 꾸었다. ‘잎이 나려면, 파란 잎이 나려면’ 이라고 떨어지는 꽃들은 외쳐대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핑게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십 몇 년 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때의 기억인데, 그 때 저는 수원에서 몇 안 되는 고층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건물 앞뒤에 정말 마지못해 면적을 할애한 듯, 보잘것 없이 작은 화단이 있었는데 출입구쪽의 화단에는 목련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고 뭐 당연히 봄만 되면 꽃을 피웠겠죠. 3월말, 혹은 4월 초의 어느 토요일 오후였는데(아마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교 3학년=1984년 정도?), 아직도 쌀쌀한 와중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탓에 꽃잎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떨어져 버렸더군요. 하여간 그래서 보도 블럭이 목련 꽃잎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으니 집으로 들어가려면 꽃잎들을 밟고 지나가야만 했는데,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밟은 탓에 꽃잎에 새겨진 선명한 발자국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기분이 이상해져서 잠시동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목련 꽃잎이 또 얼마나 두꺼운지, 밟으면 미끈미끈하기도 하지만 마른 잎처럼 바스러지는 소리도 안나고 뭐랄까, 나무에서 떨어져서 이미 명을 다 했음에도 살아있는 걸 밟는 듯 끔찍한 느낌이 들어서 아무래도 좀 주저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 그대로 눈 딱감고 밟고 지나갔는지, 아니면 돌아서 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해 목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떼고 곧 버린 꽃잎들 만큼이나 두툼하고 윤기나는 이파리를 선보이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자면 마치 마요네즈를 발라 놓은 것 마냥 반짝반짝하게.
그냥, 그때 꾼 꿈이 그렇고 그런 기억에서 나온 모양이죠. 하여간 그렇게 터덜터덜 2층으로 올라와 침대에 몸을 던져 다시 잠을 잤는데, 의식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날이 건조해 아프도록 갈라진 발뒷꿈치와 지난 주 금요일에 서둘러 모형을 만들다가 종이에 베었던 손가락의 상처가 스르륵, 아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약간은 깊은 잠에 빠졌죠. 아침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아 잠을 청하지만 정작 꿈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일들이 바로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라는 현실을 확인하게 되는 바로 그 아침까지.
# by bluexmas | 2007/05/12 11:47 | Life | 트랙백 | 덧글(4)
개도 ‘가족’으로 인지하는 인식이 꽤 광범위하구나… 하고 가르쳐주었던 일화였지요.^^ 그게…. 님 회사에도 혹시 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