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der Man 3- 딱 오천원짜리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워낙 비현실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덕에 Marvel Comics의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는 대부분 즐겨 봤지만(그 구리디 구린 Daredevil 마저도…), 이상하게도 영화화된 스파이더맨을 그렇게 열심히 본 적은 없었습니다. 스파이더맨 1편과 2편 역시 극장에서 개봉할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최근에 텔레비젼에서 보게 되었으니까요. 하여간 그렇게 잘 나가는 수퍼영웅에게 너무 존경심을 안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비록 활동범위가 뉴욕으로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시는데)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3편만은 극장에서, 그것도 집 근처의 아이맥스에서 보는 것으로 그동안 못 땄던 점수를 좀 만회할 생각이었습니다. 뭐 언젠가 스파이더맨이 나이도 먹고 해서 도시 생활을 지긋지긋하게 느끼신 나머지 제가 사는 아틀란타같이 조용한 동네로 낙향해서 살게 되었는데 저만 영화 안 봤다는 이유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면 아무래도 섭섭할테니까요. 하여간 워낙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자리를 찾아보려니 아이맥스는 주말 내내 모두 매진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이미 금요일 저녁에… 그래서 다음주까지 기다릴까, 잠시 갈등을 하다가 지난번에 300을 봤을때 아이맥스($12)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것을 상기하며, 그냥 다른 일반 극장에서 조조할인($5)으로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관심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게도 다음 주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는 느낌도 너무 강했구요. 그래서 오늘 아침 열 시에 극장으로 향했는데, 매진은 아니었지만 거의 꽉 찬 극장을 보고, 역시 수퍼맨처럼 스파이더맨의 인기는 여전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꼬마들이 이미 포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영화 조용히 보기는 다 틀렸군, 이라는 생각도 함께 하면서요.
하여간, 그렇게 전에 없었던 기대를 잔뜩 하면서까지 보게 된 3편에 대한 소감은? 다음주까지 기다려서 12불 내고 아이맥스를 보지 않은 것은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다, 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미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너무 산만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느낌이 지난 편에서의 약한 느낌을 만회하기 위해 아들 고블린과 샌드맨, 사악한 스파이더맨 자신에다가 베놈까지의 악당 종합선물셋트로 만회하려는 시도에서 온 것임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 모든 악당의 등장에 최소한의 개연성을 부여하려는 스토리상의 시도(매리 제인의 뮤지컬로부터의 해고, 알고보니 같은과 친구인 시장의 딸과 또 그의 남친이었다가 짤려서 복수의 꿈을 꾸다가 얼씨구나 좋다고 사악한 기를 받아 베놈으로 화한 에디는 알고 보니 또 피터의 자리를 뺏은 프리랜서 사진기자인데다가 그와 손 잡고 스파이더맨을 제거하려는 샌드맨은 피터의 숙부를 살해한 혐의를 받은…헉헉)로 영화의 흐름 따위는 애초에 고려조차 없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이 영화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니까 화려한 액션에 적당히 말은 되면서 권선징악+해피엔딩이면 박스 오피스 4주 1위는 문제도 아니었을텐데(뭐 지금도 문제는 아닌듯 하지만), 감독은 대체 이 영화의 모든 구석에 개연성을 불어넣고 싶은 강박관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인지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눈 딱 감고 무시한채 영화를 어중간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한 듯 보입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두 시간이 훨씬 넘는 러닝 타임 동안에도 대체 집중해서 보여주고 싶은 스토리가 무엇인지 자신도 정하지 못하는 듯 갈팡질팡하다가 피터보다 훨씬 돈 많고 잘 생겼으며 또한 아버지를 죽인 자에 대한 복수심만 제거하면 더 착할지도 모르는 불쌍한 해리만 희생양으로 삼은 채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아니, 어차피 죽일거면 대체 잘생긴 얼굴은 왜 화상을 입혀서 반쪽으로 만들었는지…-_-;;;).
어차피 블럭버스터는 블럭버스터, 제가 기대한 것은 화끈한 액션이었지 두 시간도 넘는 동안 질질 늘어지는 각종 인간적인 고뇌와 드라마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른 영화에서 얼마든지 맛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액션은? 요즘 같이 액션이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어 감각적 포화 상태에 이른 시점에서 얼마나 많은 액션 영화가 만족을 줄 수 있을까요? 스파이더맨만이 가진 액션의 매력이라면 아무래도 거미줄의 힘을 빌어 높은 고층 건물과 그 좁은 틈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스파이더맨의 자취를 마치 그의 눈으로 보는 듯한 시각적인 변화일텐데, 이미 지난 두 편에서 볼만큼 본 뒤에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론을 내리자면, 아, 이 영화는 딱 오천원짜리 조조할인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액션이 이것보다 더 뛰어났거나, 차라리 더 스토리에 치중하는 영화였다면 적어도 칠천원짜리는 되었을텐데,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함에 영화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만이 누릴 수 있는 자본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자유로움마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패착을 보이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나니, 아무래도 스파이더맨이 제가 꼴보기 싫어서라도 아틀란타로는 낙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사진은 극장에서 나눠주던 짤막한 만화책입니다. 귀찮아서 들여다보지는 않았습니다.
# by bluexmas | 2007/05/06 12:55 | Movie | 트랙백 | 덧글(4)
비공개 덧글입니다.
basic님: 무슨 예술영화도 아니고 블럭버스터가 늘어지면 용서가 안 되는 것이죠 뭐. 정 궁금하시면 보셔도 되지만 정말 기대하고 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