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Level 4 Deaths of Monday

주말내내 좋은 날씨를 너무 즐겨서 탈이 났는지, 아니면 일요일 저녁에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랬는지, 오늘 아침에는 정말 일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평소에 월요병으로 고생하는 편은 아닌데… 하여간 병가를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예비역 정신을 살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 시간이나 늦게 출근하니 마음마저 무겁게 하는 메일 두 통이 와 있더군요. 두 메일 모두 주변인들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위의 어설픈 다이어그램을 참고하자면 사실 4와 5 사이의…).

첫 번째 메일은 졸업한 학교 단과대 학장님의 돌연사를 알리는 것… 뭐 무지렁이 학생이 대학원 3년 다니는 동안 학장님 얼굴이나 제대로 볼 일 있겠냐만, 이 양반은 제가 첫 학기 마지막 프리젠테이션을 할때 와서 보시고는 나중에 따로 좋은 프로젝트라고 별 능력 없는 학생의 용기를 북돋아 주셔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분이었습니다. 거의 매년 연말이면 카드를 보내드렸고, 또 답을 보내주셨었는데 올해는 어째 소식이 없더라니… 이런 식으로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두 번째 메일은 같이 회사를 다니는 한국 사람 한 분의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 워낙 한국 사람들하고 별 왕래가 없는데다가 대부분이 저처럼 가족과 떨어져 객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경조사에 참석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래전에 이민 오신 분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니까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손님을 치뤄는 봤어도 손님이 되어 본 적은 별로 없어서 워낙 예절에 어두운데다가 우리나라가 아니니까 장례식을 참석해야 될지 어째야 할지 망설이다가 일단 문상을 가기로 하고, 점심시간에 서둘러서 카드를 사고 조의금을 준비해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시간은 이미 저녁 여덟시… 어둠을 뚫고 낯선 길을 가고 있노라니 그리 유쾌하지 못한 기분이 드는게, 이런 기분이야말로 삶의 정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길…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은 것 같은 삶, 끝은 죽음… 뭐 그런 우울한 생각들. 월요일이니까.

미국에서는 처음 가보는 장례식장에서는 11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처음 맡았던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습니다. 이곳 아니면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냄새… 시신은 영화에서 늘 보던 것 처럼 관에 모셔진 채 문상객들에게 노출되어 있었고, 저는 상주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시신 앞으로 향했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향을 피워 올리고 목례를 올린 다음 돌아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서성거리고만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회사 사람들이 여럿 도착, 인사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옆에 따로 있는 손님 방에서 잡담을 잠시 나눴습니다. 우리나라식도, 미국식도 아닌, 그러나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이 장례식장의 손님 방에는 의자도 없었고, 구석에 있는 탁자에 먹기보다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급하게 준비된 듯한 음식이 놓여 있었지만 일행 중 아무도 거기에 손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도, 속으로는 사람들이 문상을 와서 수다스러운 이유는, 아마도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지우기 위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의외로 모두에게 가깝게 드리워져 있는데, 다들 잊고 살다가 이런 곳에 오면 불현듯 각인이 되는 모양입니다. 갑자기 죽는 것도 별로 두렵지 않다던 저에게, 자신은 두렵다고 말하던 비겁한 사람 생각이 쓸데없이 났습니다. 아주 쓸데 없게도…

음식도 화투도 담요도 아무것도 없는 장례식장이 그래도 문은 빨리 닫는 법… 어느덧 닫을 시간이라 일행은 식장 문을 나서 흩어집니다. 24를 절반이라도 보려고 모르는 길을 더듬어 운전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130킬로미터로 달렸지만 이유없는 답답함은 가지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문득, 나도 잊고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속도로 출구를 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 빨간 신호등 불빛 덕분에 역시나 빨갛게 드리워진 나뭇가지의 그림자에서마저 죽음의 냄새가 짙게 느껴지는, 그런 밤이었습니다.

 by bluexmas | 2007/03/13 12:46 |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by makondoh at 2007/03/14 01:41  

새벽 2시 거의 다 되었네…호주산 샤도네이 마시고 있는데, 오늘은 왠지

캘리포니아쪽 샤도네이랑 네가 생각난다…한 잔 하면 좋을 텐데…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3/14 10:25 

그랬냐… 그렇지 않아도 주말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공원에 한참 나가 있었는데 집 베란다에서 한 잔 하면 좋았을거다. 혼자서는 영… 요즘 맥주도 완전 끊고 보드카도 안 마시고 해서, 간만에 와인 마시려고 Robert Mondavi Private Seletion Cabernet을 한 병 샀는데 기대보다 영 맛이… 혼자 마시니까 자꾸 싸구려만 찾게 되는지, 몇 주 전에는 선배 집에 저녁 초대 받아서 가는 길에 Blind Moose라고 싸구려면서 좀 funky한 Carbenet를 들고 갔는데 그건 괜찮았거든? 그것보다 로버트 몬다비가 맛이 없게 느껴진다니 이건 대체…

그렇지 않아도 차고에 부모님 드시라고 사다 놓았던 중급 리슬링도 한 병 있어. 혼자 먹기 싫어서 그냥 냅두고 있는데 들어갈 건수 좀 만들어봐라… 들고 들어갈테니까. 가고 싶어도 갈 일이 점점 없어진다 요즘은.

 Commented by makondoh at 2007/03/23 23:12  

흠흠…뭔 건수를 만들까나…요즘은 나도 별 건수가 없어서리…그나저나 너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한 병이 여기서 얼마나 하는지 아냐? 진짜 큰 맘 먹고 사야 한다는, 그 정도는…리슬링도 좋지…왕창 들고 들어오라고 하고 싶지만 요즘은 나도 열심히 놀아줄 수 없는 상황인지라…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3/24 11:16 

흐…내가 말하는 건수가 뭔지 잘 알잖냐. 올해는 그냥 신경 끄고 살기로 했다. 남의 나라에서 앞가림 하고 사는 것도 요즘은 벅차더라구. 내가 언젠가 켄달 잭슨 젤 싼 woodbridge따위가 우리나라에서 27,000원에 판다고 했던거 기억하냐? 그렇게 따지만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은 한 5만원쯤 하지 않을까 싶어. 뭐 더 비싼 것도 있겠지만 코스트코에서는 30불이면 몬다비네 양조장꺼 굉장히 좋은 놈으로 살 수 있을거야. 어쨌거나 당분간은 Carbenet가 너무 무거워서 가벼운걸로 마셔볼라구. 어디에서 주워들었는데, Smoking Loon이라고, 10불 안쪽의 저렴한 레이블인데 Zinfandel이 좋다데… 홈피는 여긴데: http://www.donandsons.com/threeloosescrews/smokingloon/zinfandel/

나는 진판델은 별로 마셔 본 기억이 없어서, 이번주나 다음주에 한 번 마셔볼라구. 여기 홈피에 나온 것 처럼 쇠고기 사다가 구워서 먹으면 될라나?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3/24 11:18 

그리고 아무래도 음주를 좀 잘 하려면 아예 네가 여기 오는게 더 나을거다. 아주 한여름 전에, 둘째 가지기 전에 오는 건 어떠냐(아예 둘째를 풍광 좋은 이곳에서 만들어 보는 건 어때? 하하…)? 그럼 난 그릴 하나 사다가 부엌 뒷 덱에 놓고, 휴가 며칠 내서 종류별로 와인 사다가 짝 맞을만한 안주 매일 만들어서… 오늘은 스테이크 내일은 참치회 뭐 이런 식으로다가…

뭐가 욕망은 넘쳐나는데 실현이 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