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diac(2007)-Vague Cathasis by Imcomplete Quest

고백하건데, 제가 이 영화에 대해 가졌던 사전 지식이라고는 몇 달 전 미국판 GQ에 실린 Jake Gyllenhaal의 인터뷰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다시 읽어보기 귀찮아서 그냥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이번에 개봉될 영화 Zodiac에서 Jake Gyllenhaal이 맡은 역할은…’정도가 제가 얻을 수 있는 정보였으니, 그 후로 저는 예고편이나 보면서  이 영화가 Jake Gynrelhaal이 Zodiac Puzzle에 남겨진 단서를 풀어서 범인을 잡는 뭐 그런 영화일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무지함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깊은 한숨으로 치환되어, 텁텁한 극장 공기와 조우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요즘들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트랜스지방으로 튀겼음에 분명한 싸구려 팝콘 냄새로 채워진 텁텁한 극장 공기와…

David Fincher… Fight Club을 기억해 내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몇 년 전, 대학원 3학기 스튜디오에서 교수는  미국에 만연한 Consumerism에 대한 분석과 그 대안 공간에 대한 계획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고, 개념을 잡기 위한 매체 가운데 하나로 Fight Club을 보여줬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영화를 보지 않을 때였고,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난지라 영화의 디테일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모호함-브래드 피트와 분명 그의 alterego임에 분명한 에드워드 노튼 사이의 관계에 대한-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생생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때 저는 아마 호접지몽(胡蝶之夢)을 떠올렸던 같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에드워드 노튼 꿈을 꾸는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느 누군가가 상대방의 환상인 것인지… 하여간 무식한 제 기억에 감독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으니, 이 영화에서 감독은 미제(謎題)로 남겨진 실화의 힘을 등에 업어 한층 더 생생한 모호함(흠, 완전한 oxymoron이군요)을 저같이 무식한 관객들에게 선사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선사하는 첫 번째의 모호함은, 바로 범인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실제 사건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벌어지는 살인 장면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범인의 모습들은 그다지 일치하지 않습니다. 범인이 현장에 남기는 메모나 신문사로 배달되는 편지의 글씨와 그가 제시하는 사건의 디테일 속에서 그는 단일 인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영화속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렇지 않으니, 저같은 무식쟁이는 계속해서 이번 살인은 모방 범죄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그럴때 마다 범인은 친절하게 편지와 증거를 보내 자신이 범인임을 입증합니다.

영화가 선사하는 두 번째의 모호함은 주인공이자 원작의 작가인 Robert Graysmith(Jake Gyllenhaal 분)이 사건에 대해 지닌 집념의 성격입니다. 형사도 신문기자도 아닌 시사 만화가이니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까이에서 접하면서도 정황상 주변인일 것을 강요당하는 그는, 영화의 중반을 넘어가서야 그가 가진 사건에 대한 집념을 제대로 표출할 기회를 가집니다. 따라서 얼씨구나 좋다,를 속으로 외치고 가족에게까지 소홀하며 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매달리지만, 그가 이 사건의 정확한 실마리를 찾음으로써 원하는 것이 순수한 사회 정의 실현인지, 아니면 호기심의 충족인지 저는 굉장히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영화가 종반으로 치닫으면서 그는 왜 이렇게 집요하게 이 사건에 매달리냐는 물음에 “I just want to see him with my eyes(100% 정확한 인용은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지만 그것이 그의 동기를 정확하게 정의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분명 실화에 바탕을 했겠지만 그가 퍼즐 풀기를 즐긴다고 했고 살인범이 보내는 편지속의 퍼즐을 고안해 내는데 사용되었을 법한 참고 서적들을 사람들에게 들이밀지만, 실제로 퍼즐을 처음 푼 사람은 그가 아닙니다.

하지만 집념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논하기 이전에, 그가 가진 이 사건에 대한 집념이 영화의 호흡을 이어 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이 모호함으로 가득한 영화 속에서 하나의 분명한 사실입니다. 몇시간, 몇일, 또는 몇 달도 아닌 근 30년이 넘는 시간적인 배경을 소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흐름이 끊기는(이렇게 흐름을 끊는 것도 저는 의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그의 사건에 대한 집념은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시점에 마저 살인 욕구보다 더 해 보이는 집착이나 광기처럼 불타오르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이 불친절하디 불친절한 영화을 보면서도 긴장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집념이 베스트셀러는 창조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사건을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법… 영화는 근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소화하려다 막판에 버거움을 느꼈는지 읽기도 힘든 자막을 남기며 시간의 뒷편으로 사라지고, 저처럼 속 시원한 결말을 기대했던 무식한 관객은 두 시간 반의 기나긴 영화 속 여정의 결말에 현실에 존재하는 미제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차리고는 끊어질세라 팽팽하게 잡고 있었던 끈을 단숨에 탁 놓아버리고는 허무함의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감독, 이걸 원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면, 정말 제대로 하셨습니다…’라는 원망의 탄식을, 위에서 말한 것 처럼 팝콘 냄새 가득한 영화관 공기 속에 흘려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텁텁하게, 그리고 뻑뻑하게…

아, 참고로 저의 무지함뿐 아니라 짧은 영어도 이렇게 긴박감 넘치는 대화로 가득찬 영화를 이해 못하게 하는데 일조했음을 추가로 밝혀야 될 것 같습니다. 카페인의 힘을 빌었는데도 그 빠른 대화를 100% 잡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by bluexmas | 2007/03/04 14:38 | Movi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해마 at 2007/03/04 20:12 

흥미가 샘솟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3/04 23:12 

네…미국 매체에서 거의 이구동성으로 칭찬하고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약간 방정떠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잘 만든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누구의 리뷰에서 처럼 masterpiece까지는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