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s Labyrinth: 리얼리즘의 붓으로 피를 찍어 그린 환상 사이의 갈등(2006)

무려 석 달만의 극장 나들이를 위해 처음 골랐던 영화는 마침 그날 개봉하던 Ghost Rider였습니다만, 워낙 에바 멘데스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니콜라스 케이지마저도 의심스러워서 망설이던 차, ‘단 하나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으니, 그것은 속편이 나오지 않을 예정이라는 것이다(내용도 모릅니다만 아마도 고스트 라이더가 죽으며 영화가 마무리 지어지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라는 어느 사이트에서의 리뷰를 보고서는 이 영화, Pan’s Labyrinth(원제: El Laberinto del Fauno)로 급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석 달 동안 극장은 물론 영화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끊고 살았건만, 배기 가스 검사를 위해 정비소에 들렀다가 Pan와 Pale Man 역할을 맡은 Doug Jones(Hellboy의 Abe Sapien역을 맡았던 그는 영화에 출연하는 유일한 미국 배우로 여기에서도 길고 복잡한 분장이 요구되는 두 역을 맡았습니다. 물론 신문의 짤막한 인터뷰도 대체 분장이 얼마나 힘들었던가에 대해 얘기하는데 거의 전부를 할애하고 있었구요)의 짤막한 인터뷰를 동네 신문에서 읽고는, 왠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프랑코가 체제를 장악하고 저항군의 공세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던 1944년의 스페인, 아직도 환상이 지배하는 동화 속 세계에 빠져 있는 10대 소녀 오필리아는 전쟁 통에 죽은 재단사 아버지의 고객이었다가 새 아빠가 된 야전 사령관 바이달이 주둔하고 있는 깊은 숲 속 기지로 그의 아이를 가진 친 엄마와 함께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전쟁과 그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피도 눈물도 없이 무자비한 군인 의붓아버지와 또 그의 아이를 가진 만삭의 쇠약한 엄마… 예기치 못한 변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가다시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오필리아에게 자신이 읽던 동화 속 세계를 향한 문이 열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겪고 있는 이 버거운 변화들을 단 한숨에 압도해버릴 만큼 거대한 변화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렇게 줄거리를 읊어대고 있으려니, 이 영화가 어린 소녀의 환상세계 모험담을 담은 환타지물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영화의 줄기를 이루는 소재는 환상 세계 자체라기 보다 서로 다른 환상 세계를 현실에서 실현시키려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입니다(그리고 그것은 사실 영화에서 미궁 labyrinth가 제목에 쓰일 만큼 중요한 공간적인 배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개인 혹은 집단 사이의 충돌은 공존하지 못하는 이념 내지는 가치관의 충돌이고, 그 이념 혹은 가치관이라는 것은 결국 현실세계를 개인 혹은 집단이 생각하는 이상 세계(유토피아)에 가장 근접하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되어 왔으니까요. 주인공 오필리아는 사춘기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요정이 등장하는 동화를 손에서 떼지 못한 채 그 세계에 푹 빠져 있고, 환상의 세계를 향한 문이 열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별 다른 의심이나 동요도 없이 그 세계의 일부가 되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의무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만들어내는 두 정 반대의 이상 세계를 향한 의지, 바이달 사령관의 공산주의와 또 그것의 확산을 어떻게든 저지하려는 저항군의 의지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오필리아의 그것과 얽혀 영화의 갈등을 고조시킵니다. 사실 역사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었던 것처럼, 모든 면에서 열악한 저항군은 공산군에게 상대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채 계속되는 희생만을 거듭하지만, 언제나 전형적인 저항군이 그러하듯 불굴의 의지만은 버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조차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래도 저들의 공세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면 다행이지’ 라는 말로 자위하며 고삐를 늦추지 않는데, 이렇게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무모해질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일종의 소영웅심 내지는 자신들이 이상세계에 대한 환상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이념만 정 반대의 극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지 무자비한 바이달 사령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령관은 뼈 속까지 공산주의 이념에 젖어, 거기에 걸맞은 완벽한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듯, 인간적인 가치판단 보다는 공산주의 교범에나 나올 법한 행위의 패턴을 열심히 보여줍니다.

하여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 이상 환상 혹은 이상 세계관이 얽히며 빚어내는 갈등을 그려내는데, 정황상 압도적인 힘의 우위(어른&집권세력)를 지닌 사령관의 환상이 나머지 두 환상을 억압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진한 피비린내를 풍겨내면서… 뭐 어떤 주어진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객체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피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는 바, 영화 속 많은 등장인물들은 총으로, 칼로, 송곳으로, 뭐 이도 저도 아니면 임신을 통한 하혈로 마저 열심히 피를 흘려대며 음침한 숲 속에서의 공방전-물론 환상끼리의-을 시뻘건 카타르시스 덩어리로 만들어줍니다. 그러는 와중에 영화는 중간 강도의 권선징악 양념을 곁들여 홍보문구 ‘Innocence Has A Power Evil Cannot Imagine’에 충실한, 그러면서도 약간은 예측을 벗어나는 절반의 해피 엔딩으로  마감됩니다. 이 글을 스포일러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줄거리에 대해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어찌 보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미 수천 번 벌어지고 또 벌어졌을 법한, 또한 그만큼 벌써 영화로 다뤄졌을 법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감독의 역량일 테니, 그 뻔하다면 뻔한 대립되는 세계관 사이의 갈등을 피비린내 나는 디테일로 엮어 특별함을 부여한 이 영화는 석 달씩이나 공백기를 두기에는 너무나 좋은 영화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 줄만한 수작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스페인 배우와 스페인어로 만들어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어차피 한글 자막이 나올 터이니 감상에는 별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미국에서는 당연히 영어 자막이 나옵니다).

무려 석 달만의 극장 나들이를 위해 처음 골랐던 영화는 마침 그날 개봉하던 Ghost Rider였습니다만, 워낙 에바 멘데스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니콜라스 케이지마저도 의심스러워서 망설이던 차, ‘단 하나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으니, 그것은 속편이 나오지 않을 예정이라는 것이다(내용도 모릅니다만 아마도 고스트 라이더가 죽으며 영화가 마무리 지어지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라는 어느 사이트에서의 리뷰를 보고서는 이 영화, Pan’s Labyrinth로 급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석 달 동안 극장은 물론 영화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끊고 살았건만 배기 가스 검사를 위해 정비소에 들렀다가 Pan와 Pale Man 역할을 맡은 Doug Jones(Hellboy의 Abe Sapien역을 맡았던 그는 영화에 출연하는 유일한 미국 배우로 여기에서도 길고 복잡한 분장이 요구되는 두 역을 맡았습니다. 물론 신문의 짤막한 인터뷰도 대체 분장이 얼마나 힘들었던가에 대해 얘기하는데 거의 전부를 할애하고 있었구요)의 짤막한 인터뷰를 동네 신문에서 읽고는, 웬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프랑코가 체제를 장악하고 저항군의 공세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던 1944년의 스페인, 아직도 환상이 지배하는 동화 속 세계에 빠져있는 10대 소녀 오필리아는 전쟁통에 죽은 재단사 아버지의 고객이었다가 새아빠가 된 야전 사령관 바이달이 주둔하고 있는 깊은 숲 속 기지로 그의 아이를 가진 친엄마와 함께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전쟁과 그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너무나도 무자비한 군인 의붓아버지와 또 그의 아이를 가진 만삭의 쇠약한 엄마… 예기치 못한 변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어딘지로 모를 곳으로 끌려가다시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오필리아에게 자신이 읽던 동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세계를 향한 문이 열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겪고 있는 이 버거운 변화들을 단 한숨에 압도해버릴만큼 거대한 변화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렇게 줄거리를 읊어대고 있으려니, 이 영화가 어린 소녀의 환상세계 모험담을 담은 환타지물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 영화는 그저 단순한 디즈니풍 환타지 물이 아닙니다.

자신의 몸을 할애하여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갈등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내지는 각기 다른 인간들이 빚어내는 제각각의 환상이 충돌하며 엮어내는 갈등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주인공인 소녀 오필리아는 이미 졸업하고도 남을만한 나이에 요정이 등장하는 동화를 읽으며 그 세계에 푹 빠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환상의 세계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도 별 다른 의심이나 동요없이 자신을 그 세계 속으로 던집니다. 이렇게 오필리아의 환상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두 정 반대의 환상 세계가 대립각을 세우며 갈등을 고조 시키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의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바이달 사령관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의 환상과 그에 맞선 저항군의 그것입니다.

(나중에 역사를 체크해볼 것)

사실 너무나도 뻔한 얘기고 역사 속에서도 그렇듯이, 모든 면에서 열악한 저항군은 공산군에게 상대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채 계속되는 희생만을 거듭하지만, 언제나 전형적인 저항군이 그러하듯 불굴의 의지만은 버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조차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래도 저들의 공세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면 다행이지’ 라는 말로 고삐를 늦추지 않는데, 사실 이것은 일종의 소영웅심 내지는 자신들이 이상세계에 대한 환상이 빚어내는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이념만 정 반대로 향하고 있을 뿐이지 무자비한 바이달 사령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다 큰 어른인 이들 역시 자신만이 지닌 환상의 세계가 있고 그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애나 어른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하여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 환상이 얽히며 빚어내는 갈등을 그려내는데, 정황상 압도적인 힘의 우위(어른&집권세력)를 지닌 사령관의 환상이 나머지 두 환상을 억압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진한 피비린내를 풍겨내면서… 뭐 어떤 주어진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객체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피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는 바, 영화 속 많은 등장인물들은 총으로, 칼로, 송곳으로, 뭐 이도 저도 아니면 임신을 통한 하혈로 마저 열심히 피를 흘려대며 음침한 숲 속에서의 공방전-물론 환상끼리의-을 시뻘건 카타르시스 뭉터기로 만들어줍니다. 그러는 와중에 영화는 중간 강도의 권선징악 양념을 곁들여 홍보문구 ‘Innocence Has A Power Evil Cannot Imagine’에 충실한, 그러면서도 약간은 예측을 벗어나는 결말을 선보이며 결국 환상은 환상일뿐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허무한 생각을 필자로 하여금 하게 만듭니다. 이 글을 스포일러로 만들고 싶지 기 때문에 줄거리에 대해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어찌보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미 수천 번 벌어지고 또 벌어졌을 법한, 또한 그만큼 벌써 영화로 다뤄젔을 법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감독의 역량일테니, 그 뻔한 얘기들을 피비린내 나는 디테일로 엮어 특별함을 부여한 이 영화는 석 달씩이나 공백기를 두기에는 너무나 좋은 영화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줄만한 수작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개의 환상이 빚어내는 갈등이 서로 얽혀가면서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두 환상: Fairy Tale(오펠리아)

독립의 환상(저항군)

사령관의 환상

But Life is Cruel, you will learn: 어머니의 대사

환상을 현실로 일궈내기 위해 치루는 대가: 진흙으로 범벅된 드레스/죽음

어쩌면 진흙은 어린이 레벨에서의 피, 그러므로 둘은 다른 기표지만 같은 기의를 지니고 있는 소

 by bluexmas | 2007/02/26 13:27 | Movi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Eiren at 2007/08/13 14:44 

얼마 전에 DVD로 빌려 본 영화였습니다만, 하도 이 영화가 잔인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정작 보고나니 저는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괴롭게 잔인하진 않더라고요. DVD에는 감독이 영화에 대해 죽 코멘트를 다는 영상이 있는데 그걸 들으면서 다시 보니까 이것저것 궁금했던 게 많이 풀리더군요. bluexmas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감독도 현실과 환상세계가 얽히고 맞물리는 부분을 세세하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더군요.

그리고 혹시 짐작하셨나요? 감독 코멘트를 듣고서야 안 내용인데 영화 속의 판과 그 아이 잡아먹는 pale man이 동일인물이랍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15 13:57 

삶이 원래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닌데요 뭐… 이 영화의 잔인함은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별로 반감이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글에서 쓴 것 처럼, Doug Jones는 그 두 인물뿐 아니라, 최근에 개봉한 Fantastic 4의 Silver Surfer, 그리고 Hellboy의 Abe Sapien역까지, 특수 분장이 요구되는 역은 다 맡는, 아주 피곤한 인생의 배우죠. 인터뷰에 보면 보이지도 않고 스페인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연기했는지, 그런게 잘 나와 있었답니다.

 Commented by Eiren at 2007/08/15 14:44 

아, 연기한 배우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도 맞지요. 분장 한 번 하는데 5시간씩 걸렸다는 그 배우분..;;

그렇지만 저는 스토리 상의 판과 pale man이 동일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오필리아에게 과제를 주는 동시에 시련을 주는 괴물로서도 등장하지요. 동일인이라는 유일한 증거가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오필리아가 지하세계의 공주로 환생할 때 pale man 에게 먹혔던 요정들이 멀쩡하게 살아있었다-는 것이라고 감독이 말합니다만.. 저로서는 꽤 충격이었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16 11:54 

앗, 그런 의미였군요. 저도 기억나요 마지막장면…알고보면 그 모든게 치밀하게 짜여진 시험이었던 걸까요? 어쨌거나 영화는 마지막에서 영화가 다루고 싶었던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에 대해 약간 흐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린 아이가 죽음으로서 해탈을 맞아야 될 필요까지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