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늘 그렇게
들이치고 내치고를 반복하는 것, 제가 오지 말라고 해서 안 오고, 또 붙잡는다고 해서 머물지도 않습니다. 그걸 여태껏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저도 때로는 그 들어오고 나감을 저의 힘으로 조절하고 싶은 욕구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는 같은 양의 무력감으로 치환되어 오랫동안 마음을 시리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이번에 들렀다 떠난 파도는 능력만 있다면 좀 더 빨리 떠나줄 것을 재촉하고 싶을 정도로 저를 힘들게 하더니 오늘에서야 슬그머니 저의 홀대에 쌓인 섭섭함을 토로하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악역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에게 더 좋은 공간이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얼마 먹지도 않은 나이지만 그나마 나이 먹을 수록 현명해진다(old and wise)는 말에 조금이나마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안되는 건 정말 안 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더 많이 깨닫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파도는 올때도 오고 싶어서 오고, 떠날때도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것인데 그것의 속성에 아쉬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형성되는 자기방어기제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어이없는 감기로 아픈 목을 다스리며, 파도가 떠난 바다 저 먼 곳을 잠깐 바라봅니다. 잠깐 힘들었지만 곧 괜찮아 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 집으로 들어가 블라인드를 내려 놓은 채, 당분간은 밖을 바라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때가 되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올 것입니다. 그 때를 대비해 모래사장에 널부러진 쓰레기들이나 제때 주워 버리는 것 밖에, 당분간은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 by bluexmas | 2006/01/17 14:14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