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의 영화들(4)
12. Charlie’s Chocolate Factory (07/16/05)
팀 버튼의 팬이 절대 아니었던 제가 ‘Big Fish(2003)’를 우연히 여러번 보고 약간의 관심을 가지게 된 후 보게 된 영화가 ‘Charlie and Chocolate Factory’ 라는 사실은 개인적이긴 해도 무척 의미 심장합니다. Big Fish는 근처 테네시 주의 시골동네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대학후배를 만나러 갔다가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영국출신인 이완 맥그리거의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미국 남부(제가 사는 동네) 억양이 신기해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이 영화를 HBO에서 반복해서 보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에 매력을 느꼈고, 과연 그의 능력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했던 이 찰리와 초콜렛공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꾸며낼지 정말 많은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기대는 그다지 잘 보답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감독에게 기대했던 것은 영화의 시각적인 재구성이었지, 이야기의 재구성은 아니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우연치 않은 기회에 텔레비젼에서 1970년대의 원작도 본 후, 팀 버튼의 상상력과 현대기술로 이 영화가 어떤 시각적 재미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이지, 그가 스토리라인에도 개입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제가 원작을 다시 읽지 않은지는 거의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윌리 왕카에게 치과 의사인 아버지가 있었고, 또 그와의 갈등으로 집을 뛰쳐나왔다는 부분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윌리의 회상장면이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나올때마다 구역질을 하는 모습 등은 영화를 감상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각적인 부분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말하자면 홀랑 뒤집어주는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저에게 약간은 용두사미 같았습니다. 차라리 Big Fish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더군요.
13. Wedding Crashers (08/01/05)
2002년의 ‘Old School’ 이후로 윌 패럴/빈스 본/ 루크 & 오웬 윌슨 등이 출연한 ‘Anchorman(2004)’ 와 같은, 알고 보면 순 미국식 정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잘 이해하기 어려운 코미디물을 몇 편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쩌다보면 대사도 알아듣지 힘들지만, 저 배우들의 개인기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재미를 주기 때문에 말을 못 알아 들어도 영화를 즐기기에는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개봉했는지 모르겠지만, Wedding Crasher는 전혀 친분이 없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전문적으로 여자를 ‘후리는’ 남자(혹은 반대도 가능하겠죠)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연인 빈스 본과 오웬 윌슨은 미친듯이 온갖 결혼식에 참석해서 재미를 보다가, 제대로 한 건 크게 해보자며 재무장관(크리스토퍼 월켄 분)의 큰 딸 결혼식에 참가했다가 각각 둘째 딸, 세째 딸에게 물려 예기치 않은 상황에 휘말리게 됩니다.
일단 배우들 덕분에 웃겨주는 이 영화는 사실 단순한 코미디 영화라고 하기에는 은근한 풍자의 재미를 맛보게 해주는데, 그 풍자의 뉘앙스가, 잘 나가는 미국이 안 보이는 곳에서 이렇게 뒤틀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Amerian Beauty(1999)’ 일견 비슷합니다. 물론 강도는 약합니다만… 게다가 미국 동부의 전통(물론 겨우 몇 백년 되는 일천한 역사를 지닌 미국 같은 나라에 뭐 ‘전통’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좀 그렇지만)적인 상류층 집안이 어떻게 옷 입고 먹고 사는지, 이런 것들을 살짝 맛보는 재미도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하여간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13. Transporter 2 (09/03/05)
있는지도 몰랐던 전편에서 뭔가 나르는 역할을 했던 주인공은, 이번 속편에서는 평화롭게 살고자 미국의 휴양도시 마이애미에서 부자집 아들의 기사노릇을 하다가 해결사의 숙명처럼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본능적으로 해결에 나섭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액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저의 바램에 제대로 화답한 영화가 바로 이 Transpoter의 속편입니다. 전편은 보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전편보다 낫다고 하더군요. 사실 액션영화라는게 약간의 개연성만 가진 각본에 잘 된 액션에 양념으로 약간의 유머만 있으면 그럭저럭 봐주는 것이니 그렇게 기대를 높이 가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에코가 말했던 것을 약간 응용한다면 액션 영화에서 이야기라는 것은 액션을 넣기 위한 당위성을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테니까요.
# by bluexmas | 2005/12/29 12:26 | Movi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