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해서 용감한 당신

늦은 밤, 회사 동료의 생일 축하 모임에 잠시 들렀습니다. 어느 그릴의 라운지였는데, 이런 곳에서의 모임이 다 그렇듯이 모르는 사람들끼리 돌아가며 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지만 집에 돌아오면 기억나는 사람이나 얘기는 없기 마련입니다. 하여간 이사람 저사람과 얘기를 나누던 중, 최경주의 팬이라는 남자와 잠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북한 얘기를 꺼내더군요.

“아, 북한 사람들 너무 불쌍해, 헐벗고 굶주리고…”

“그러게, 그건 아무래도 내가 더 잘 알겠지.”

“그래서 우리가 말이야, 일단 이라크를 진정시키고, 이란을 거친 다음에, 북한에 가서 다 쓸어버리면 헐벗고 굶주린

북한 사람들이 구원될꺼야.”

“…….(what the hell are you talking about?-_-;;;)”

어째 남부 억양이 지나치게 진하다 했더니, 이 남자도 영락없는 redneck이었던 모양입니다. 신문의 독자투고란에서 신물이 나도록 들어온 얘기지만, 실제로 사람을 만나서 또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특수 상황(그 넓은 라운지와 그릴에 동양인은 정말 저 혼자였던 것 같았습니다) 아래에서 이런 얘기를 들으니 그저 이 미국인들의 자기 중심적인 무지함에 기가 막힐 따름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지내다보면 깨닫게 됩니다. 미국이 세계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잘난척하면서 세계 경찰 노릇을 하는게 아니고 당장 일회용품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라구요. 아마 세계는 곧 그들이 아무 생각없이 쓰는 일회용 그릇이며 수저에 파묻혀서 곧 절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by bluexmas | 2005/12/23 14:10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