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으로 여는 아침
밝은 햇살과 함께 맞아도 짜증이 넘치는 아침, 오늘은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충만한 어둠으로 아주 사악하게 열었습니다. 새벽에 정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지각하지 않으려고 새벽에 깨어나 시계를 확인하는데, 늘 너무 밝아서 잠도 못 이루게 만들던 10불짜리 소니제 라디오 시계가 오늘은 눈을 감은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약 30초간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것입니다. ‘정전이다-시계가 안 울렸다-늦잠잤다-지각했다-병가 쓴다’ 의 5단계 시나리오가 본능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오늘은 마감날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블라인드를 걷어보니 몇 시인지는 몰라도 불이 켜진 집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파트 전체의 정전임을 확인한 저는 마루 어딘가에 던져둔 핸드폰을 열심히 찾아 시간을 확인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 여섯시 이십 분,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침대로 향합니다. 한 시간을 더 자고 역시 지각 예정권에 진입하게 되는 일곱시 이십 분쯤에 일어났지만 여전히 전기는 먹통인지 난방도 없고 불도 켤 수가 없었습니다. 춥고 어두운 아침, 아침에 먹으려고 밤에 타이머를 맞춰놓은 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는걸 보니 다섯 시 이후에 정전이 된 것 같았습니다. 자정에 네 시간짜리 타이머를 맞춰났었으니까요. 너무 어두워서 밥도 결국은 코로 먹어야 될 것 같아서 일단 아침 먹을 생각을 깨끗이 접은 후, 누군가의 생일에 받았지만 아직도 집에 굴러다니는 비상용 초를 꺼내 화장실에 밝혀놓고 출근 준비를 합니다. 세수는 문제 없지만 면도는 역시 어렵습니다. 샤워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더운물이 나오지만, 나오지 않았어도 샤워를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출근을 하지 않던가…
전기가 없으니 음악도 들을 수 없고, 인터넷도 뒤질 수 없는 저는 의외로 출근 준비를 빨리 마칩니다. 보통은 일어나서 출근하기까지 한시간이 걸리는데, 적어도 1/3은 인터넷 서핑 으로 낭비하는지라 이걸 생략하면 정말 빠르게 출근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도 오늘은 너무 집이 추워서 빨리 차를 타고 히터로 몸을 녹여야 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빨리 출근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냉장고를 열고 우유라도 꺼내 마실까 했지만 언제 전기가 다시 들어올지 모르니 차라리 안 열어보는게 나을 것 같아서 그대로 둡니다. 어차피 배웅해주는 사람도 없는게 인지상정인데 꼭 집에서 쫓겨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오늘은 마감날, 어차피 막 굴러먹게 될 하룬데,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에 돌아왔을때 집이 다시 온기를 되찾기를 바라면서 더 추운 밖으로 나섰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전형적인 아틀란타의 겨울 날들 중 하루였던 오늘, 하루의 시작은 그렇게 상쾌했습니다.
# by bluexmas | 2005/12/16 13:24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