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안녕.
목요일의 마감을 앞두고 팀원들이 모여 짧은 미팅을 가졌습니다. 이번 마감을 넘기고 또 다음주가 지나면 저는 지금의 팀에서 잉여인력이 되므로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입니다만, 아직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할지는 결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조직생활은 평생 하지 않으리라고 마음먹고 살았었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자꾸만 쉬운 길을 골라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학교에 10년이나 있다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조직 자체에 순응하는 것이 개개인에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 보다 어려운 법, 처음 몇 달 동안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루고서야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면 누군가가 낼름 그러겠죠, 그거 클리셰라고, 누구나 다 그런 시기를 거친다고…
정말 아무 생각도 꿈도 계획도 없이 회사를 한참 다니다가 제가 들어오기도 전에 사람들이 저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한참 동안이나 부끄러웠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럴듯한 핑게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조직에 몸담고도 보탬이 되지 못한다면 존재의 의의가 희석되는 법이니까요. 하여간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처음 몇 달을 투명도 50%의 반투명인간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필요할 때는 사라지고, 필요없을 때만 눈 앞에서 얼쩡거리는… 아직도 100% 불투명화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한 80%라면 스스로에게 만족할 것 같습니다.
한 살씩 더 먹을수록, 유지하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휘발성을 가진 그것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직에서의 인간관계는 정말 그렇습니다. 한데 모여서 같은 과업을 위해서 시간을 보낼때는 뚜껑을 닫아 놓은 셈이라서 다들 일도 같이, 잡담도 같이, 밥도 같이 먹고 때로는 함께 기뻐도 하고 슬퍼도 합니다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어주던 매개체가 사라지는 셈이므로 끈끈함은 곧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다들 언제 그렇게 지냈냐는 듯, 서로 다시 마주치면 무심하게 ‘hi, how are you?’를 빠른 속도로 던지고 사라지곤 합니다. 상대방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알아나가기 보다는 있는 사람들을 정말 다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자질구레한 이유들로 목록에서 지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테니까요. 때로는 지우고 또 때로는 지워지고… 그러다 보면 결국 가족이 남고, 조금 더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들 몇 명이 남기도 하겠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짧은 한 마디, 안녕, 이 돌아갈 뿐입니다.
어쨌거나, 다음 주면 또 갈림길에 서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또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당분간은 제가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제 대강 눈치로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에서 신호가 떨어지면 부지런히 쫓아 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반투명 인간은 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 순간까지는 선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겠습니다.
# by bluexmas | 2005/12/13 14:35 | Life | 트랙백 | 덧글(2)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 뿐이다’
헤세의 말인데요, 저는 저 말,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나서 많이 평정을 찾은 상태입니다. 결국 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도 다시 걷게 되는 것도 누구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힘이어야 하니까요.
숨고르기 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