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생의 맛 모모푸쿠

112시간 6분. ‘인생의 맛 모모푸쿠(원제: Eat A Peach)’의 작업에 투입된 시간이다. 나의 1근무일은 4시간이므로 대략 28일만에 모든 작업을 끝낸 셈이다. 똑 떨어지게 400쪽짜리 역서에 들어간 시간치고는 꽤 짧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작년의 마지막 작업이었는데 나는 정말이지 물소처럼 일했다. 앞뒤 안 가리고 원서의 활자들을 들이받아 우수수 쓰러트리듯 번역을 했달까? 그렇게 읽는 대로 족족, 쓰러트린 말들을 시차가 전혀 없이 스크리브너에 옮겨 담았다. 정말이지 너무 격렬하게 달린 탓에 올해 초, 후유증으로 한 달 넘게 고생도 했었다. 사실은 그런 페이스로 일하면 안되는데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멈출 수 없었다면 사실 나라도 안 믿겠지만 정말로 그러했다.

‘인생의 맛 모모푸쿠’는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 여러 갈래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계속해서 자기가 대체 왜 유명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정말 그렇게 들리지만, 요리의 세계에 있거나 발을 들여 놓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래도 훌륭한 가이드북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특히 말미의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한 서른 세 가지 규칙’ 가운데 ‘요리 학교에 가지 말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라’ 같은 충고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이에게는 내가 펴낸 ‘미식대담‘도 권한다).

요리와 상관 없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이 재미있게 읽힐 여지는 엄청나게 많다. 기본적으로 ‘망했어야 하는 사람이 신기하게도 망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만큼 좌충우돌 드라마가 많아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게 될 것이다. ‘아, 이쯤 되면 한 번 쫄딱 망할 때가 되었는데’라고 생각이 들 때에도 망하지 않는 게 영 신기해서 ‘다음 장에서는 망했을까? 그 다음 장에서는?’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안 망하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 데이비드 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그가 정신건강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데이비드 장과 또래로서 쑥대밭이 된 정신의 황야를 매일매일 추스리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누군가 말해줄 때 조금이나마 세상이 더 망하지 않는데 기여를 한 것 같아서 기뻐진다.

어쨌든, 다소 엉망진창 좌충우돌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엄청난 야심이 없이도 마치 그런 것처럼 성공하게 된 과정을 비교적 세세하게 기록해 놓아서 웬만하면 재미있으니 많은 이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사족: 전작이자 요리책 ‘뉴욕의 맛 모모푸쿠‘도 있다.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