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와 떡볶이
급기야 나도 어제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었다. 그것도 저녁밥을 다 안쳐놓은 다음에서야 말이다. 밀떡을 젓가락으로 떠 후루룩후루룩 넘기며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지금 거대한 바이럴에 속고 있는 건 아닐까? 알고 보면 센세는 아직까지도 2018년에 광고 출연한 업체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닐까? 떡볶이를 악마화하는 것 자체가 좋아하는 이들은 물론, 별 관심이 없는 이들까지도 먹게 만들려는 일종의 술책은 아닐까?
센세께서 사장 단일후보로 내정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원서나 한 번 넣어 볼 걸 그랬네, 생각이 들었다. 발표대로 맛집을 가리기가 입후보의 자질이라면 나라고 안 될 게 없지 않을까? 게다가 나는 전미 35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익혔고 무엇보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그렇다면 고향이 마산임을 늘 강조하시는 센세보다 더 나은 후보는 아닐까? 그러나 나는 누군가를, 특히 누군가를 지지하지도 도저히 지지할 수도 없는 사람이니까 안되겠지.
음식평론가로서 일을 하며 늘 센세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왔다. 무엇보다 재미도 없고 남는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시각이나 식견이 있다면 모를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의 막말이라면 논파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낭비일 뿐만 아니라 담론의 장 또한 형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술주정하는 아재와 굳이 논쟁할 필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한때 센세의 책을 전부 샀다가 아무런 디테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처분해 버리고야 말았다. ’00에 대해서는 일본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라는 말이 계속되지만 그 일본의 방식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설명은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모른다는 데 500원 걸 수 있는데, 어쨌든 논리가 없으니 반박할 수도 없다. 그걸 논리로 반박하려 들면 센세의 전략에 휘말려 같이 진흙탕에서 뒹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좀 다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칭 맛 컬럼니스트-음식평론가가 아닌 이유를 우리는 늘 생각해 보아야 한다-가 그런 자리의 (단독) 후보로 오른다니. 이제 닭이 치킨집을 차려도 전혀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지금까지 센세의 전략은 하나였다. 만만해 보이는 대상을 찾아서 일단 악마화하는 것. 이러면 개중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듯 맞는 말도 무작위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게 된다. 게다가 현대의 음식에는 늘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의외로 다수에게 잘 먹히면서 지지층을 확보하게 된다. 그렇게 넓어진 지지층은 역으로 어떤 발언을 하더라도 그야말로 지지층이므로 당위에 상관 없이 일단 지지해준다. 그렇게 사람의 저변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넓어진다.
이런 전략이 소금이며 떡볶이 등에서 아주 잘 먹혔지만 백종원에 이르러서는 먹히지 않았다. 일단 백종원이라는 캐릭터가 센세께서 계획한 대로 진흙탕으로 끌려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실제로 그의 접근이 많은 이들에게 요리의 가장 큰 두려움인 맛내기를 극복하게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상대를 잘못 골랐고, 이후의 일은 모두가 본 그대로였다.
현재 온갖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센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돌아가도 이득이라 생각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많은, 더 덩치가 큰 이들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일 완벽한 기회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실존하는 사람을 악마화하면 식재료를 대상으로 삼았을 때보다 더 많은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미움을 사겠지만 그것마저도 센세의 입장에서는 큰 자원이라 본다. 센세에게는 음식과 맛은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커리어의 목표 같은 게 절대 아니다. 적을 적으로 확실하게 돌리는 작용의 반작용을 원동력으로 삼아 지지층을 확실하게 확보해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 그게 센세의 목표이다.
물론 괴물을 키운 이들은 언젠가 그 책임을 반드시 져야만 할 것이다. 어찌 보면 괴물보다 더 나쁘니까. 누가 강아지만한 불가사리의 덩치를 집채만하게 키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