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텔] 오이소박이-호텔 정문에 김칫국물을 뿌리마

1킬로그램에 26,900원. 고급 김치의 선두격으로 꼽히는 조선호텔 김치를 총력 리뷰해 볼 심산으로 가장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부터 손을 댔다가 어이가 없어져 삶의 의욕을 잃었다. 주말 내내 앓아 누워 있다가 월요일 새벽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국물이 흥건하고 오이 또한 무르기 직전인데 어디에도 간이 하나도 배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절이지 않은 오이에 양념을 버무려 포장을 한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고춧가루는 꽤 매워서, 먹으면 오이의 풋내와 더불어 혀를 찌르는 알싸함 밖에 남지 않는다.

어떤 맛을 지양해야 평가가 가능할 텐데 이 소박이에는 그런 게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실리콘 밸리의 주변부만 대강 돌아놓고 한국에 들어와 ‘인사이트’나 읊어대며 멘토 놀이에 여념 없는 가짜 ‘구루’ 같달까? 이 정도의 가격이라면 어느 좌표를 찍어주어도 상관 없으니 ‘나는 이런 맛을 지향한다’라고 당당히 선언해도 모자란데 오이 겉절이 수준이라니. 남은 오이 1쪽과 김칫국물을 조선호텔 정문에 뿌리고 오고 싶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