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쿡] 프로슈토-약진하는 구린내
꽥. 비닐 포장을 뜯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체 이 약진하는 구린내는 뭐지? 야, 그 미국애들이 만든 가짜 프로슈토에서는 구린내가 난다구. 10년도 더 전에 박찬일 셰프에게 주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나도 그런 구린내를 잘 안다. 당장 코스트코에서 파는 미국산 프로슈토를 사면 이탈리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냄새가 난다.
다만 그 냄새는 사실 구린내보다는 누린내에 더 가깝다. ‘ㄱ’ 다음에 ‘ㄴ’이듯 누린내는 구린내 다음의 2인자이다. 거슬리기는 하되 원천인 음식은 참고 먹을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즐길만도 하다. 하지만 구린내, 특히 단백질이 썩어가는 냄새는 다르다. 유청으로 만든 프로틴 파우더를 먹은 뒤 텀블러를 안 씻고 하루만 놓아 두어보라. 참으로 역한 냄새가 날 것이다.
바로 이 프로슈토의 냄새가 그러했다. 이토록 약진하는 구린내라니. 먹으면 혹시 다를까 싶어, 또한 그래도 직업 정신에서 맛은 봐야 겠다는 생각에 입에 넣어 보았으나 프로슈토는 얇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따라서 껌처럼 질겅질겅 씹는 동안 구린내의 약진은 흥을 타고 한층 더 두드러졌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결국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
포장에는 ‘엄선한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사용하여 천일염으로 1개월 이상 숙성 후, 3개월 이상 건조숙성 시킨 고급 발효 생햄’이라 쓰여있다. 그래서 결국 4개월 만에 만들었다는 말이군. 이제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고작 4개월 가지고는 먹을만한 프로슈토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물론 그또한 재료가 멀쩡하다는 전제 아래서나 실현 가능하다. 우리의 돼지고기는 과연 이런 종류의 육가공품에 적합한 걸까? 순환 논리이기는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실물을 확인하시라. 마블링 하나 없이 촘촘한 조직을 확인하시라.
만드는 이들도 그걸 모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돼지고기와 천일염 외에도 설탕, 포도당, 흑백후추, 산화방지제, 발색제, 동결건조 유산균 등을 썼다. 애초에 이들도 돼지고기와 소금, 그리고 시간만으로 만들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토록 약진하는 구린내를 맡자마자 내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고리가 완성되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국산 가공육이 일관되게 선사했던 구린내의 고리였다. 계속 먹어가면서도 나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반신반의했다. 이게 뭘까, 왜 이런 걸까?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 및 묘사하기 어려웠던 국산 가공육의 실체가 고리 모양으로 완성되자마자 손오공의 긴고아처럼 내 의식을 둘러싸고 조여대기 시작했다.
으으. 대단히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류의 국산 가공육을 당분간은 먹지 못할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고, 참을만도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프로슈토가 정말 치명적이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약진하는 구린내를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품질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가운데 시간을 들여 만드는 식품을 흉내내고 싶다면 둘 중 하나만이라도 잡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모든 실패는 단순한, 선의의 시행착오가 아닌 의도적인 속임수로 낙인찍히고 만다. 이 프로슈토에 이르러 나는 (대량생산) 국산 가공육이 그런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노라고 선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