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토스 베이커리-자연스러운 투박함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골판지로 칸막이를 만들어 빵을 나눠 놓았다. 3만원어치를 샀더니 이렇게 배송이 된 것. 작은 손길이지만 파는 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투박하지만 자연스럽고 제 몫은 충분히 한다.

빵에 지쳐 좀비처럼 살다가 우연히 컬리에서 아르토스 베이커리의 통밀빵을 발견했다. 통밀빵이라면 목침(혹은 영어권의 doorstop, 굄돌?)일까봐 걱정부터 하는데 훌륭했다. 통밀과 백밀의 비율이 반반이라면 미리 불린 반죽(soaker, 통밀로 만든다)을 하룻밤 전에 만드는 수준에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빵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제빵은 꽤 심각해진다. 불린 반죽은 물론 미리 (자연발효종으로) 발효를 시킨 반죽까지 더해야 통밀의 효소나 겨 등에 대처할 수 있다.

이처럼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잘 구운 통밀빵은 특유의 투박함을 지닌다. 백밀빵에 비하면 많이 부풀어 오르지 않으니 덩치는 작고 속살도 한결 더 촘촘하고 뻑뻑하다. 재료 목록을 살펴보니 아르토스 베이커리의 통밀빵은 통밀 80퍼센트에 조직을 강화시키기 위한 글루텐을 더해 반죽을 만든다(글루텐 첨가는 통밀빵에게 꽤 일반적인 해법이다). 결과물은 아주 잘 만든 통밀빵에 비하면 한켜의 투박함을 더 쓰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고 통밀의 복잡다단한 맛이 훌륭하게 잘 살아 있다. 또한 과학적인 실험의 결과는 아니지만 속도 편하고 소화도 잘 된다.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생김새에 아주 살짝 쭈글쭈글한 표면 등 한 발짝만 기술이 더 나아가면 개선될 요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중에 널린 빵들의 참담함을 감안한다면 그건 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다. 계란, 버터 등 동물성재료를 전혀 쓰지 않는 정책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제품군을 맛보기는 어렵지만 이 단계에서 일단 만족할 수 있다(물론 덕분에 채식을 추구하는 이들 등등에게 호소력이 클 것이다). 말하자면 진심이 보여서 이해가 될달까?

팥빵과 옥수수빵, 카카오빵을 뺀 나머지를 한꺼번에 사서 먹었는데 발아시킨 통밀 알갱이가 고소하게 톡톡 씹히는통밀그대로빵이 가장 훌륭했다. 어느 시점에서 물리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냉동실에서 대기하며 내 식탁의 붙박이로 지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