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음료 단상: 점도와 촉감

호기심에 곡물 음료 몇 종을 먹어 보았다. 평소에도 냉장고에 매일두유 99.89를 늘 쟁여 놓고 사는 가운데, 오틀리의 유행 이후 등장하는 곡물 음료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궁금해졌다.

국산 제품들은 사진의 1리터들이 한 팩에 3천원 대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첨가물의 부재로 그럭저럭 맛이 깔끔하다. 하지만 첨가물의 부재는 점도와 촉감의 결핍을 의미하므로 음료들은 결국 뜨물과 달지 않은 아침햇살 사이에서 방황한다. 한편 백화점에서 30퍼센트 정도 할인에 들어가 5,000원대에 집어 들어온 이탈리아산 곡물 음료들은 증점제의 도움을 받아 우유보다 나으면 나았지 뒤지지는 않는 점도를 자랑한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설탕 대신 쓴 아가베 시럽 특유의 신맛이 거슬리며, 입체감을 주기 위해 더한 착향료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계속 마시면 피로해진다.

채식과 상관 없이 곡물 음료를 일상의 마실 것으로 편입시키겠다면 국산 제품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들을 우유의 대체품으로 쓰려 든다면 쉽게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했듯 점도와 촉감을 더해주지 못하니 커피 등 원래 음료가 원하지 않는 정도로 묽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수입산을 선택하기에는 일단 가격부터 걸린다. 단일 목장 (유기농) 우유 수준의 가격이지만 그만큼의 가치를 지닌 음료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점도와 촉감에 이끌려 선택했다가 경우에 따라 맛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래저래 190밀리리터 한 팩에 500원대인데다가 무료 배송인 99.89가 최선의 선택 같지만 사람이 늘 같은 것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 채식 관련 시장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데 완성도 높은 제품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그쪽에서 펼쳐지는 지옥은 굉장히 끔찍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