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산수 지옥의 도래
핸드크림을 사러 동네 올리브영에 갔다가 집어든 자체 브랜드의 파인애플향 탄산수는 정말 최악이었다. 드디어 탄산수 지옥이 도래하고야 말았구나. 차가 쌩쌩 지나가는 사거리를 건너 오르막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다. 기억하는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편의점에서 페리에와 산펠레그리노 등을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롯데 트레비가 등장해 이들을 몰아냈다. 이제 탄산수 매대는 트레비와 씨그램, 빅토리아가 사이 좋게 지분을 나눠 먹고 있다. 담합해 동네를 장악하고 어린 아이들의 코묻은 돈을 알겨 먹는 양아치들 같다. 이제 초정탄산수마저 편의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맛이 너무나 없어 문제이다. 탄산이 빠진다면 이들을 그냥 물맛으로 마실 수 있을까? 나는 없을 것 같다. 대체 이 물은 어디에서 길어오는 것일까? 수원지로 찾아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진짜 음용수로 만드는 제품이 맞는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플레인’을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현상 또한 심각하다. 맛없는 물에 탄산을 쑤셔 넣고 과일향으로 덮어 버린다. 코끝이 싸해 뭔지도 모르고 들이키지만 넘긴 다음의 느낌이 참으로 불쾌하다. 레몬, 라임, 복숭아, 청포도, 그리고 파인애플까지. 다른 것 같지만 똑같다. 무향의 여백을 참을 수도 없고 헛점이 드러나니 참아서도 안된다.
그렇게 물은 잔뜩 혼탁해진 채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갈증을 해소해줄 거라 절대 기대하지 마라. 국산이 등장하고 브랜드가 늘어나고 향이 가지각색이니 다행해졌노라고 믿을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시늉만 낸 똑같은 것들이 우리를 사소한 지옥불로 조금씩 더 몰아가고 있다. 고통이 심해 죽을리는 절대 없지만 짜증이 나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사소하고도 미약하게 타오르는 지옥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