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1개 마음은 6개’ 리뷰의 악랄함
코로나 시국 탓 이후 배달앱을 쓰기 시작했다. 정말 쓰고 싶지 않았으나 집밥도 미쳐버리도록 지겹고 치킨이나 피자, 햄버거의 로테이션으로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앱을 깔고 월 2회 정도 쓰고 있는데 나름의 장점을 파악했다. 앱을 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괜찮은 동네 음식점들을 찾은 것이다. 불모지 동네에서 발품 팔아서 다니며 절망한 곳들 외에도 먹을만한 음식을 파는 곳들이 있었다니.
이런 곳들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나면 리뷰를 달 때도 안 달 때도 있다. 음식이 좋았다면 달고 그럴 경우 대체로 별은 다섯 개, 좋았지만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으면 네 개를 준다. 만약 그 이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아예 리뷰를 안 쓰고 만다. 요즘 같은 시기에 요식 자영업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수 없는데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식을 받아 보아도 알 수 있다.
최근 열심히 시켜 먹은 중식당에서는 한 번 삶은 면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보낸다. 그보다 더 나은 대처 방법이 없지 않을 테고 소다를 넣지 않은 면이라 이상적인 구간에서는 대체로 벗어나 있지만 적당히 보정해서 먹는다. 불특정 다수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마저 불안한 요즘 그 정도 수준에서 내가 만들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 여기면서. 음식점도 그런 식으로 면을 배달 내보내야 한다고 예전부터 생각을 했을까? 배달이 아니면 지속가능성이 위협 받으므로 머리를 짜내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리라.
이렇게 소비자로서 리뷰와 별점을 고민 없이 주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별 세 개를 준 경우가 있었다. 음식은 아니고 네이버를 통해 산 브로컬리였는데, 무게 단위로 파는 것이 송이는 작고 줄기가 엄청나게 굵고 길었다. 대략 보아도 전체의 절반 이상이 줄기인 신기한 경우인지라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이유를 밝히고 사진을 올리고 별은 세 개만 주었다. 그래도 되나, 평소보다 더 많이 고민했다.
이렇게 살고 있다 보니 트위터에서 누군가 음식점에 별은 1개를 주지만 ‘마음은 별 6개’라는 리뷰를 상습적으로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사람이 이렇게 비열하고 악랄할 수도 있구나. 음식이든 서비스든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별 1개가 왜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이런 경우는 다르다. 돈 몇 만원 쓰고 일시적으로 손에 넣은 소비자 권력을 최대한 악랄하게 써서 생산자를 두 번 엿 먹이려는 시도이다. 생각해 보자. 일단 앱을 통해 집계되는 음식점의 평판은 별의 개수로 결정되니 1개라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악랄하고 비열한 소비자는 ‘마음은 6개’라는 평가를 남겨 면피하는 한편 생산자에게 한 번 더 엿을 먹인다.
나는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이 인성이 멀쩡하고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으며 빨간불에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는 수준의 상식만 가지고 있다면 그런 식으로 다른 인간을 엿먹일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별을 주고 정당한 이유를 밝힌다면 생산자도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별을 1개 줄 정도로 문제가 있다면 6개 수준으로 마음에 흡족해질 수 없다는 건 초등학생도 알 것이다.
하여간 이런 식의 뒤틀린 소비자 권력의 행사가 정말 큰 문제이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자신도 비판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문제가 있다면 지적은 최대한 이성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자가 평가와 그 장본인을 넘어 세상 혹은 사회를 불신하고 증오할 정도까지 비열하고 악랄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군다나 요즘 같은 현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