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악의로 빚은 맥주
국산 맥주를 평가하기란 참으로 재미 없는 일이다. 평가 자체가 재미 없지는 않다. 다만 ‘그럼 네가 그걸 맛있다고 하겠냐?’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지겨울 뿐이다. 몇 주 전, 지인과 곱창집에서 테라를 마셨다. 맛의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였으므로 사실 클라우드를 골라야 하는 맥락이었다. 조미료를 들이 부은 듯 앞에서 힘을 ‘빡’ 준 클라우드가 곱창처럼 기름기 많은 음식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맞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마시다 보면 ‘음 이것은 정말 너무 조작을 한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물려버리는 클라우드지만 그나마 빛날 수 있는 맥락이었다. 거칠고 기름기 많은 음식 말이다.
이렇게 짝을 알고 있는 가운데 좋은 기회다 싶어 테라를 주문했는데…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일단 내가 마시는 것이 맥주여야만 맥주로서 맛을 평가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맥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걸? 한마디로 해외 맥주 평가 사이트에서 ‘말 오줌’이라 평가하는 전형적인 국산 맥주를 티백으로 만든 다음 탄산수에 냉침해서 만든 음료 같달까. 정말 맹물처럼 별 자극이 없이 넘어가는 가운데 끝에서 가장 맛없는 국산맥주를 물로 희석시켰을 때에나 나올 법한 강도의 불쾌한 단맛, 신맛, 쓴맛이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세 맛이 전부 이처럼 약한 가운데서도 이만큼이나 불쾌할 수 있을까. 참으로 놀라웠다. 혹시라도 내가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마셔서 뭔가 놓치는 게 있나 싶어 따로 사다가 마셔 보았는데, 집중해서 맛을 보면 좀 더 불쾌하다는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게 궁금했다. 양념이 매운맛을 필두로 지랄발광하는 현재 한국의 음식 현실에서 정말 이렇게 가늘고 약하고 표정도 없는 맥주가 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하이트나 카스 같은 맥주야 오래 됐으니 그렇다고 쳐도, 어떤 사고 및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면 2019년에 이런 것을 신제품이라고 낼 수 있는 걸까? 편의점에 온갖 세계 맥주가 들어와 맛의 비교가 가능한 현실에서 이다지도 맛의 격차가 큰 제품을 내놓더라도 어차피 팔릴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걸까?
테라를 마시면서 ‘여러분들이 뭐 맛을 아십니까? 그냥 주는 대로 감지덕지 드십시오’라며 맥주 회사 사람들이 낄낄거리는 장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그들이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쯤 되면 맛이라는 것을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인데 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는 말이다. 악의 없이 이런 제품 출시가 가능할까?
좀 더 큰 그림을 보면 한층 더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단 한 군데, 제과제빵 프랜차이즈가 두 군데인 현실 말이다. 맛있어서 먹나, 아니면 있으니까 먹나? 다른 선택을 찾을 수는 있나? 몰라서 없나, 아니면 원래 없어서 모르나? 국산 맥주도 이런 현실을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심지어 외산 맥주를 수입해서 ‘병 주고 약 주는’ 여건까지 조성하면서 말이다. 광화문 사거리에 테라 상자를 컨테이너로 쌓아 놓고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던지면서 항의해야 한다. 대체 여러분들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이따위 맥주를 2019년에 만들어 파는 것입니까? 거북선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한 자랑스런 이순신 장군의 후예인 우리가 그렇게 호구로 보입니까?
*사족: ‘소맥 말면 괜찮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원래 맥주에게 결핍된 것을, 그것도 더 싸고 맛없는 술로 보충할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