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클리어 코카콜라-안타깝게도 괴식
후쿠오카에 갔다가 라임 클리어 콜라를 마셨다. 눈에 들어와서 집었는데 신상품이었다고. 콜라와 시트러스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조합이다. 콜라의 끝에는 항상 쓴맛과 단맛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기 위한 신맛이 존재하며, 콜라와 시트러스류의 향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레몬 한 조각으로 콜라의 맛을 북돋아줄 수도 있고, 아예 향을 첨가한 제품도 있다. 그래서 콜라에 라임이라면 전혀 무리가 될 조합이 아니지만, 한 모금 먹고 뚜껑을 닫은 뒤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속편하게 색깔만을 지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음식의 맛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화이트와인에 색소를 더해 레드와인처럼 바꿔 놓으면 정말 레드와인을 마시고 있다고 착각하고 반응을 보인다. 콜라라는 음료 또한 짙은 갈색이 빨간 포장과 더불어 음식의 시각적인 정체성을 강하게 형성하므로 ‘클리어’한 걸 마신다면 맛이 똑같더라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맛이 실제로 좀 다르기도 했다. 콜라도 라임도 신선refreshing 하지 않고 퍼진 느낌이랄까. 일본에 가서 마실 때마다 느껴오기도 했고 이걸 마신 뒤에 확인을 위해 한 번 더 사마셨는데, 한국의 콜라와는 맛이 사뭇 다르다. 고과당 콘시럽으로 찌르는 듯한 단맛을 내기에 미국의 것과는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가운데, 똑같이 설탕을 썼지만 일본의 콜라 맛은 표정이 굵으면서도 섬세함이 떨어진다. 기본적인 맛도 그렇지만 탄산도 ‘이것은 혹시 일본에서 유통되는 맥주의 맛을 따라 깔아준 걸까?’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폭도 넓고 알갱이도 굵은 느낌이다. 콜라나 맥주 등 탄산 주입 음료나 주류가 신선할 때 형용사 ‘crisp’를 쓰는데 그 반대편 어딘가에 자리 잡은 맛이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역시 퍼진 라임맛을 끼얹는다. 흐느적거리는 콜라의 멱살을 상큼하게 잡아주어도 모자랄 판에 되려 더 퍼져서 콜라의 멍석을 깔아준다. 합성착향료라면 억지로라도 상큼함을 과보정할 수도 있는데 ‘어 말 시키지마 나 어제 토할 때까지 소주 마셨어~’같은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사흘 면도 안 한 사십대 후반 아재 같달까. 그리하여 이것은 안타깝게도 괴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