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고집 다복면-전통의 지표 찾기, 재료의 ‘스토리 텔링’
이보노이토 등 수입되는 일산 소면을 주로 먹다가 마켓 컬리-조만간 글을 쓰겠다-에서 국산을 주문했다. 500그램에 2,900원(580원/100그램)이니 절대적으로 비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흔한 대량생산 소면(오뚜기 등)이 100그램에 290원 수준이니 상대적으로는 두 배 비싼 것이다. 그래서 맛있는가? 그냥 평범하다. 국수, 건면처럼 최소한의 재료로 만드는 음식은 특유의 고소한 여운으로 맛을 판가름한다. 여운의 존재는 물론 강도며 길이에 따라 주재료인 밀가루의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대량생산 소면에서는 대체로 여운이라는 것 자체가 대놓고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다복면은 무엇인가 있을 것도 같다가 없다. 둘에 차이가 있기는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는 의미이다.
재료를 확인해보니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산과 호주산 밀가루로 뽑은 면이었기에 나는 궁금해졌다. 포장에서 말하는 ’80년 전통’이란 과연 어디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소면을 이야기했듯 국수는 비단 한국만의 음식이 아니다. 따라서 보편적인 공정을 따라 만들 가능성이 높으니 세월 혹은 역사와 제조법을 엮어 전통을 강조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다복면도 80년 세월만 이야기할 뿐 그 방식이 다른 소면 제품과 정말 다른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제품에게 차별성 있는 홍보 수단으로서 역사나 전통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재료일 수 밖에 없다. 국내 생산 식품을 전부 국산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전통을 들먹이고 싶다면 현재로서는 남은 수단이 그것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야 세월이 흘러 생산공정이 기계의 힘을 비는 쪽으로 바뀌더라도 재료에 정체성(혹은 누군가가 좋아할 ‘스토리’)이 남아 있다면 제품의 가치는 지킬 수 있다. 판매처인 마켓컬리에서 소면을 검색해 보면 가장 비싸게 팔리는 일본산에게는 전부 재료, 그도 아니라면 면발의 굵기를 비롯한 형식으로 한 줄이라도 그럴싸한 정체성을 불어 넣고 있다. 하지만 이 면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럼 소비자는 어떤 명분과 근거로 대량생산품과 일본 수입산 사이에서 이 제품을 선택할 수 있을까?
물론 인터넷을 뒤져 보면 국산 밀로 뽑은 소면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다복면의 생산업체인 풍국면에서도 만든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의미가 있을 만한 스토리는 갖추고 있지 않다. 국산 밀가루는 왜 소면의 재료로서 의미 있는 지분을 차지하지 못하는지, 또한 홍보에 쓸만한 스토리는 왜 갖추지 못하는지 1차생산자, 즉 농가가 답을 할 여력이 없다면 가공업자라도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를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이야깃거리가 하나도 없다면 그거라도 어떻게든 써먹을 수가 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사족 1: 대체 누구의 기획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포장이 기만적이라고 여긴다. 왜 굳이 비닐 포장 자체로 완결적인 제품을 종이상자에 또 담았는가. 그럴 거면 100그램이든 50그램이든 소분해서 묶어 주는 편이 훨씬 소비자에게 이롭지 않았을까? 포장의 조리법은 ‘1인분 100그램 기준’이라 명시하고 있지만 저울을 갖추지 않는다면 정확한 계량은 불가능하다. 늘 말하지만 이런 측면은 맛의 개선 이전에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사족 2: 이런 식품의 고급화가 안 된다면 생산자에게 ‘멘탈 블락’ 같은 게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단지 고급화의 방식을 모르는 게 아니라, 고급화를 딱히 원하지 않거나 의식/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품고 있는 것이다. 가격은 오르지만 경험의 수준은 높이지 못하는 노포의 멘탈도 비슷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