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온리-커피의 새로운 바닥
지난 주에 올라온 조선닷컴의 ‘싸구려 커피 겨울편‘에서 등장한 ‘무인’ 커피는 요즘 약간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온리’이다. 나는 정말 놀랐다. 정녕 커피의 바닥이란 아직도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았구나. 900원짜리에 애초에 기대를 하면 안되겠지만, 그 없는 기대의 살얼음을 깨고 곧장 지구의 핵까지 맹렬하게 뚫고 내려가는 맛없음이란 참으로 대담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900원이라는 돈이 아깝지는 않지만 단 한 모금 만으로도 그날 먹은 모든 음식의 기억을 뒤덮어버리는, 실로 압도적인 맛없음에 내 안에 조심스레 품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한 귀퉁이가 찌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저가=저품질’이라는 편견을 깨다!’라는 문장이 쓰인 입간판을 매장마다 내놓고 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저가=극저품질’이라는 편견을 강화시키니까. 저품질 정도라면 바로 그 입간판에 절을 하면서 이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맛이 없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음식-커피란 정말 새로운 차원이 아닐까? 바로 그러한 점을 기록하고자 글을 쓴다. 우리 사회가 꾸준하고도 체계적인 맛없음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제 웬만한 패턴은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또한 맛없음의 바닥 쯤은 충분히 예측하고 있노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때, 커피 온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뒷통수를 호되게 후려 갈릴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어찌 보면 나는 이 커피의 존재가 고맙기까지 하다. 단돈 900원!에 공사다망한 인생에서 불거져 나오는 온갖 버거움과 기분 나쁨과 처절함과 자괴감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다. 다 마실 필요도 없이, 단 한 모금!에.
앞에서 말했듯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고 있으니 곧 당신의 동네에도 들어설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것을 권한다. 그래도 삶이 행복하다 느낄 때에는 절대 손 아니 입을 대면 안된다. 어째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 모든 불행이 마치 나의 것이라 느낄 때, 그럴 때 최후의 보루로 쓰라. 고작 900원이라는 푼돈으로 당신은 상대적인 행복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음식 관련 필자 최초로 모 신문의 ‘올해의 필자 10인‘으로 선정된 음식평론가가 보장한다.
*사족: 편의점 커피를 브랜드 별로 마셔보면 전부 일관되게 맛이 없는 가운데 딱히 어렵지 않게 줄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위는 기계와 큰 상관이 없다. 우리는 기계를 뜯거나 핥아 먹는 게 아니라, 커피콩을 기계로 추출한 물을 마신다. 물론 기계가 일정 수준 커피의 맛에 기여하겠지만 이런 수준의 커피들은 대체로 기계 쯤은 가볍게 추월하는 품질을 자랑한다. 글을 공유했더니 ‘뫄뫄 편의점 커피는 천 만원짜리 기계를 쓴다는데 의외네요’라는 반응이 나와서 덧붙이는 이야기이다. 맛있는 커피는 어떻게 내려도 맛있고 맛없는 커피는 어떻게 내려도 맛이 없다. 재료의 완성도를 파악할 줄 모르는 이들이나 정량화 가능한 기계 등에 목을 매는 것이다.
*사족 2: 맛없는 커피-아메리카노는 과연 ‘샷’과 물의 비율이 안 맞아서, 즉 멀겋기 때문이 맛이 없는 것일까? 일정 수준 그렇지만 주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맛있는 커피는 좀 옅어도 맛있고 맛 없는 커피는 진해도 맛이 없다. 나쁜 아메리카노에 똑같이 나쁜 샷을 추구하면 커피의 단점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한층 더 맛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체로 더 쓰고 떫어져서 한층 더 불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