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바나나의 무른 질감
서울 및 경기 이외의 지역을 다닐 때 가장 관심을 쏟는 곳이 고속도로 휴게소의 지역 특산물 판매점이다. 획일화된 식당이나 편의점에 비하면 그나마 다양성을 느낄 수 있고, 공을 들여야만 살 수 있는 식재료를 더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품질도 대체로 좋다. 채소나 과일도 괜찮지만 말린 나물이 대체로 훌륭하다.
그런 가운데 경남 산청의 휴게소에서 바나나를 발견했다. 1킬로그램에 5,500원. 계산하며 물어보니 제주도에서 재배하던 이가 와서 기술 지도를 해 준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맛은 흔히 마트에서 찾아 먹을 수 있는 바나나보다 ‘해상도’가 조금 약한 편이다. 대체로 한국의 과일이 해상도가 약한 가운데 끝이 뭉툭한 단맛만 순간적으로 치고 나오는 경향이 있다. 이 바나나도 비슷한 가운데 다행스럽게도 단맛만 이질적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잘 다듬은 맛은 아니었지만 거슬리지도 않았다.
그런 가운데 질감이 좀 신기했다. 바나나의 상태나 맛을 보아 푹 익은 것 같지 않은 상태인데 과육은 이미 껍질 전반이 검게 변한 상태와 흡사한 수준으로 물렀다. 바나나는 딴 뒤에도 익으며 전분을 당으로 전환하는 과일이다. 따라서 덜 익은 것을 실온에 두면 차츰 단맛이 강해지는 동시에 물러진다. 따라서 적절히 덜 익은 시기에 사다 놓으면 맛과 질감의 지점에 따라 쓸모가 다양하다.
풋내가 가시고 맛이 막 들기 시작할 무렵의 바나나는 설탕 등을 익혀 팬에 지지면 아이스크림 등에 곁들일 수 있는 탄수화물로 훌륭하다. 한편 적정 지점을 넘어 곤죽에 가깝게 익었다면 갈아 머핀 등의 퀵브레드를 굽거나 셰이크 혹은 스무디의 바탕으로 쓸 수 있다(이 지점까지 익은 바나나라면 껍질을 벗겨 개별 냉동해 짚락 등에 보관하면 장기 보관하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바나나의 이런 일반적인 물성을 고려한다면 내가 먹은 국산 바나나는 적어도 1/3가량의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셈이다. 수입산 바나나의 ‘쫀득쫀득함’을 홍보에 강조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왠지 이질적이었다.
이것은 과연 의도일까?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농사 혹은 재배는 내가 잘 모르는 기술적인 영역이다. 재배지역의 기후나 품종 등에 따라 국산 바나나의 최선이 이런 질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라면? 대체로 한국의 과일은 생식만을 염두에 둔 품종이 주류를 이룬다. 적어도 통상적인 수입 바나나보다 60퍼센트는 높은 지점에서 시작하는 국산 바나나의 가격을 감안하면 애초에 그런 용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일 수도 있다. 기후는 물론 기호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국내 재배 농산물의 범주가 더 활발하게 확장되기를 막연히 바라는데, 한편 그런 가운데 맛과 쓰임새의 목적지에 대한 논의도 좀 더 활발했으면 좋겠다.
*사족: 무농약 혹은 유기농 농산물이 대체로 안전하다고 믿지만 바나나는 껍질이 두꺼워 그런 조치 혹은 인증의 의미가 덜하기로 대표적인 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