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타코 아미고-추상적으로 사나운 부리토
사나운 부리토의 전설을 들어 보았는가. 고기며 밥, 사워 크림 등등을 대형 토르티아가 미어져라 채운, 압도하는 부리토 말이다. 생 양배추나 고추장 따위를 욱여 넣은, 비실비실한 (소위 한국식) 부리토는 옆에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 질려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는 사나움 말이다. 이런 부리토의 사나움에는 한 가지의 전제 조건이 딸려온다. 바로 ‘끝까지 다 먹을 때까지 사나움을 유지할 수 있는 디테일을 갖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먹어대는 동안 양의 감소 외의 이유로 사나움을 잃는 부리토는 진정 사나운 부리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추상적인 사나움일 뿐이다.
오잉?간만에 이태원 타코 아미고에 들렀을 때, 부리토는 그렇게 추상적으로 사나웠다. 접시 바닥과 맞닿음으로서 간신히 완결성을 유지하는 부리토라니. 불과 서너입만에 처참하게 무너지는 부리토를 먹으며 나는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사나움이 사나움다워야 맞서는 즐거움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 일종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음식의 구성이 부리토의 사나움을 한층 더 추상적으로 내몰았다. 멕시코 음식에 감자튀김이라니! 누군가는 분명히 불경스러움을 입에 담을 정도로 이 부리토는 무엇인가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은박지 한 장이 모자라 사나움을 지킬 수 없는 부리토에 나는 깊은 슬픔을 느끼고 만다.
이성을 조금 찾고 헤아려 보자면, 무엇인가 이익추구와 맞물린 내부 조정이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도 썩 좋지는 않았던 부속 요소들이 싹 사라라진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감자를 바로 튀겨서 낼 정도의 여력이라면 그런 요소들을 굳이 없앨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여간 미국 시골 어딘가의 스트립 몰에서 먹을 수 있는 멕시코 음식 맛을 충실하게 재현해내는 것이 매력이었던 이곳의 부리토가 두 손 사이에서 산산히 흩어지는 걸 겪으며, 내가 그에게 느꼈던 친근감 또한 산산히 흩어지는 걸 느꼈다. 이제 그는 나의 친구가 아니다.
‘사나운’이라는 표현 말인데요, 혹시 어떤 맛에 관한 외국어 표현에서 따오신 건가요?
그나저나… ‘이젠’ 친구가 아니군요. 예전에 맛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어요.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fierce 정도겠죠. 그냥 평범한 멕시코 음식이었습니다…
오우예
표현력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