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음식 아닌 무엇, 사람 아닌 괴물
먹어보기 전까지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겠거니 여기고 지나쳤다. 그런데 어제는 길 건너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고는 디저트가 생각났다. 가장 가까운 신세계로 건너갔지만 거기라고 뭔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쓰겠다). 그래서 오’슬로를 먹게 되었다. 그리고는 알았다. 이것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아니구나. 아니, 이것은 아예 디저트가 아니구나. 더 나아가 음식의 형식과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 같지만 음식이 아니구나.
우유(과연?) 아이스크림 기계에 넣고 뽑아낸다. 결과물은 아이스크림보다 소르베에 가까운, 차갑고 얼기설기한 무엇인가다(도저히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심지어 단맛도 거의 없다. 지방도 없고 단맛도 없으니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이걸 쓸데없고 불편하도록 길게 뽑아낸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같은 수분을 부어 ‘플로트’를 만든다. 조직이 치밀한 것도 아닌데 그걸 길게 뽑아 놓고 (뜨거운) 액체를 부었으니 자칫 잘못하면 점원으로부터 받아드는 사이에 무너져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냉동인 것처럼 보이는 ‘쇼케이스’에 1분인가 두었다가 내는 게 아닐까? 빙과류에 속한다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민망하지만 어쨌든 얼었다가 녹으면 얼음 결정이 생길 수 있다. 결국은 빙과류의 단점인데 이런 여건을 일부러 만들어 놓고 ‘아삭아한 식감을 위한 배려’처럼 포장해 놓았다. 조금의 가감도 없이 기가 막혔다.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먹는 아포가토는 후자가 녹으면서 전자에 달콤함이나 부드러움, 풍성함 등을 불어 넣는다. 물론 단맛과 쓴맛, 그리고 따뜻함과 차가움의 대조 등도 맞물려 단 두 요소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비슷해보이지만 이 플로트에는 그런 효과가 전혀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달지도 풍성하지도 않은 얼음이 에스프레소에 녹으면 질척하면서도 서걱거리는 곤죽이 되어 버린다. 온갖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붙이지만 결국은 해체한(decostructed) 편의점의 슬러시가 될까말까하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화이트 초콜릿을 박아주었는데, 낮은 온도까지 한 몫 거들어 아무 맛도 없을 뿐더러 플라스틱처럼 딱딱했다. 평창 올림픽이라니, 뭔가가 절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이었다.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일반소비자가 아니니까 음식에 대한 모든 만족도를, 맛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이라는 한 가지 요소만으로 판단내리지 않는다. 똑같이 불만족스럽더라도 삼십 만원쯤 드는 파인 다이닝의 코스보다 오천원 짜리 유사 빙과를 훨씬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이 무엇인지도 모를 음식도 아닌 것 말이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둘 중 하나다. 생각이 아예 없거나, 생각이 있지만 음식이 음식일 수 있는 조건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쪽으로 계발 및 구현된다. 생리학부터 공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의 원리가 인간의 경험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음식에 경험적 맛을 구현 및 구축한다. 달리 말해 대한민국 국민의 99.9%가 ‘입맛은 주관’이라고 한 목소리를 높인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음식이 음식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요인은 객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가게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아이스크림 제조기 같은 것을 예로 들어보자. 수학이나 공학 같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과학이 없다면 주관 따지기 전에 음식이 생겨날 수조차 없다.
뭘 말하고 싶냐고? 객관적인 원리 같은 것들이 음식에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게도 그것들을 정말 너무나도 절묘하고 아름답게 비껴 나가는 이런 음식이 먹다가 배터져 죽을 정도로 많은 이 현실이 너무나도 신기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알고 보면 정말 거대한 동어반복을 몇 년 동안 지겹도록 해오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그리고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똑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신기함과 놀라움이 가실 날이 없다.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라는 영화 대사를 생각하며, 나는 알 수 없는 얼음 곤죽을 먹다 말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말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음식이 아닌 이런 걸 계속 먹으면 결국 괴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너무 두렵다. 2018 대한민국 화이팅!이다.
취향이라는 것도 완성도를 지닌 음식 위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죠.
음식같지도 않은 것들을 온갖 미사여구와 악세사리로 치장해서 팔아먹으면서 약점을 잡히면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항변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힙니다.
우웩…ㅠㅠ
동의합니다. 제품보다 말만 앞서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진과 글을 보니 어떤 질감의 아이스일지 짐작이 가네요. 차라리 맥도날드 아니 미니스톱의 소프트가 더 나을지도.. 빕스에서 저런 아이스를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매번 알면서도 써내려가는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