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국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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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물론 기록에 이름을 남긴 이는 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 탕국랜드를 가능케 만든 장본인이라고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칫하면 큰 문제가 될 뻔도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탕국랜드가 전국구 관광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은 덕분이다.

탕국랜드. 너무나도 직관적인 명칭이므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이름 그대로 탕 또는 국을 파는 일종의 위락단지였다. 한 발에 뚝배기를 들고 다른 발로 어렵사리 엄지발굽을 추켜 세운 소가 아치의 양 옆에 떡허니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로 네 글자가 들어서 있다. 탕국랜드.

탕국랜드는 기존의 시설의 관광자원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다가 나온 기획안이었다. 목장 및 도축 단지의 구조 위에 난립하는 음식 서바이벌의 형식을 얹는다. 전국의 유명 탕 및 국 음식점을 한 곳에 모으고 운영본부가 몇 가지의 기본 요소를 고정으로 제공한다. 각 업소는 그 위에 각자의 맛을 쌓고 매상으로 경쟁한다. 판매량 및 실적을 운영본부에서 집계해, 매 분기 또는 반기마다 실적이 가능 낮은 업소를 퇴출시키고 후보군 가운데 선택해 새롭게 입점시킨다.

일단 빠른 퇴점 및 입점을 위해 모든 업소에 같은 면적과 집기, 인테리어 등을 기본 제공한다. 업소가 교체될 경우 간판만 바꿔 다는 수준에서 일주일 내로 영업이 가능해진다. 한편 음식에 관한 기본 요소를 위해 공장을 설립한다. 세 가지 요소, 즉 바탕 육수와 밥, 그리고 김치를 통일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일단 바탕육수는 도축장에서 나오는 자투리나 잡뼈를 처리해 일괄적으로 추출한다. 업소는 여기에 각자 원하는 부위를 도축장에서 필요한 만큼 받아 최종 국물을 낸다. 족을 우리든 양지를 끓이든 선지를 쏟아 붓든 그건 각 업소의 비결에 따라 자유다. 그저 많이 팔기만 하면 그만이다. 김치는 고랭지 배추를 바탕으로 철과 수급 상황에 따라 단 한 가지로만 가짓수를 제한하고, 월별 상한선을 정해 할당하는 방식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인다. 한편 밥공장에는 도정시설을 기본으로 갖춘다.

한편 단순히 음식에만 기대지 않고, 운영본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위락시설도 나름 심혈을 기울여 확충했다. 콘셉트는 어린이를 위한 올바른 맛 교육에 초점을 맞춘 패밀리 에듀테인먼트 센터였다. 한우의 역사와 맛 등을 집중 조명하는 교육관을 비롯해 탕국에 빠질 수 없는 김치 담그기 실습 프로그램(물론 담가서 집에 가져갈 수 있다), 쌀의 일생을 다룬 교육 영화 상영관부터 소의 모양을 닮은 탈 것 등의 오락시설도 유치했다.

업소의 유치는 빈 말로라도 수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쳤다. 각자 나름의 울타리 안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업소가 많다 보니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해놓은 거래처의 고기만 몇 십 년 동안 받아왔으므로 다른 식재료로는 맛을 못 낼 거라며 난색을 표하는 업소는 아주 흔했고, 심지어 현재 입지의 기가 국물맛의 비결이므로 절대 다른 곳에는 확장할 수 없다고 말하는 곳도 한두 군데는 됐다. 물론 이 모두는 결국 이익분배 비율의 조정을 통해 그럭저럭 마무리 되었다.

4 Responses

  1. 2900 says: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프롤로그인 거죠? 본편도 얼른 보고 싶습니다 🙂

  2. 종현 says:

    로버트 오언 같군요

  3. aCat says:

    심야짜장에 이어 소설집필에 들어가신 분위기…

  4. 안준표 says:

    일본만화 라면 요리왕에 등장하는 라면 전국시대같은 느낌의 카테고리 킬러군요. 흥미진진하지만.. 탕국보다는 차라리 한우랜드라거나 한돈랜드가 더 성사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탕국보다는.. 구워먹는 고기에 많은 사람들이 홀릭하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