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1988년 아니면 89년이었다. 처음 과천 현대미술관에 갔던 해다. 같이 갔던 친구들의 기억을 감안하면 1989년이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또 다른 일이 생각난다. 그래서 1988년이 맞는 것 같다.

어쨌든 몇몇 애들과 버스를 타고 과천 시내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 어디론가 계속 올라갔다. 꽃이 핀 보도를 걸었다. 잠깐, 그럼 봄이고 1989년일 텐데… 모르겠다. 하여간 엄청나게 많이 걸었지만 길이 좋고 걷는 게 즐거워서 힘들었다는 기억은 전혀 없다.

씨발 같이 가 개새끼야. 어 이게 뭐야 무서운데. 뒤의 벤치에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온갖 소리가 지나갔다. 의식하고 싶지 않았지만 소리는 그런 것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었다. 하늘을 본다고 해서 소리가 귀에 안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정말 오랜만의 과천이었는데 사람이 꽤 많았고 나는 그를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5년쯤 전 학예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들른 게 마지막이었는데 그때와 1988 혹은 89년 사이의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높고 낮은 아파트의 단지, 그 사이로 난 길, 먼 옛날 주택공사의 그래픽 등으로 무척 좋아했지만 단 몇 번의 예외를 빼놓는다면 과천은 언제나 지나치면 창 밖의 풍경만으로 마음에 품고 마는 도시였다.

미술관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커피를 마시려고 과천 시내의 스타벅스에 찾아갔다가 그때 바로 버스를 내린 그 지점을 기억하고 또 곱씹었다. 정말, 정말 먼 길이었다. 이제는 기억을 잘 못하는 만큼이나 다시 걸어보고 싶지는 않을, 그런 길이었다.

1 Response

  1. Barde says:

    저는 과천 하면 4호선으로 지나가야만 했던 도시의 기억이 강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