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두 얼굴
하루 한 잔씩의 커피값을 얼마 동안 아끼면 산악자전거를 살 수 있다면 기사가 최근 등장했다. 그 자체로는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이미 미국에서 회사 다니던 시절, ‘라테 한 잔 아끼면 몇 년 뒤에 차 산다는데 엿 먹으라지’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므로), 맨날 원가 따지는 것보다는 나름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커피의 원가를 들먹이는 기사가 또 등장했다. 굳이 보아야 할 기사들이 아니므로 링크는 생락하겠다.
이런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커피의 두 얼굴이 생각난다.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얼굴은 일종의 각성제, 아니면 연료로서 커피다. 카페인이 잠을 쫓고 정신을 들게 해준다. 요즘은 여기에 에스프레소를 바탕 삼은 ‘배리에이션’이 가세했다. 점심 식사 후 매운맛 위주로 폭발하는 뒷맛을 가셔주기 위한 단맛+지방+커피향의 디저트다. 맛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굳이 상관 없다.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기능이 절실하게 필요한 여건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외의 커피, 다른 얼굴도 존재한다. 감정, 더 나아가 문화의 매개체다. 분위기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통제한 공간에서 사람과 관계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연료로서의 커피가 이 얼굴 또한 책임질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격이 떨어진다. 정확하게 이런 맥락에 필요한 커피는 맛도 좋아야 한다. 단순히 재료, 즉 콩의 품질이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몫으로 떨어진 세심함이 각 과정에서 최대한 발휘되어야 한다. 심지어 커피 바깥 영역의 문화 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런 두 번째 커피의 얼굴을 누리리가 힘든 현실에서 계속 첫 번째 커피만 두들겨 패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두 번째 얼굴의 커피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음식의 많은 곁가지 가운데 커피가 가장 좋다고 선언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생각마저 한다. 심지어 커피 바깥 영역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딱히 충분하지 않다고 이해하는 상황인데도 그렇다. 무슨 의미일까. 그만큼 커피가 세계적으로 저변이 넓다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까. 커피 자체만을 레퍼런스로 삼아도 일정 수준의 질적 수준 향상이 가능할 만큼 자료가 많다는 의미다.
커피의 두 번째 얼굴이 점점 더 세를 넓히고, 나아가 첫 번째 용도의 커피를 잠식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연료로서 출근길에, 또는 컴퓨터가 부팅되는 시간 동안에 한 잔 구해 와 정신을 차리려는 용도로 쓰더라도, 맛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져야 한다. 그런데 굳이 커피를 계속해서 때릴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들마저 커피의 첫 번째 얼굴에 티나게 기대지 않고서는 일할 수 없을 텐데.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62310292976990 뭐 이런 기사를 보면 두 얼굴 중 한쪽만 때리고 있다는 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하필 비교군이 왜 저건지 좀 의아하긴 한데…
엇 저는 바로 이 기사를 보고 블루마스 님이 이 포스팅을 하셨나 생각했는데요^^;; 커피전문점에서의 테이크아웃은 돈낭비다, 왜냐면 원가가 1000원짜리 편의점이랑 비슷하기 때문이다, 라는 건 연료로서의 카페인을 때리고 있는 거 아닌가요. 쓸데없이 비싼 연료를 꼭 마셔야 겠냐, 정 그렇다면 사치하지 말고 싼거나 먹어라 라는 맥락이 깔린 걸로 읽혀서요 저는.
저도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뉘앙스를 너무 빙 돌리신거 아닌가 싶어서요. 커피가 다 똑같으므로 비싼걸 마실 필요가 없다는 논리는 단순 기능성 연료로서의 커피의 입지를 더 강하게 하는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거든요 저는. 연료로서의 커피라고 해도 더 맛있는걸 먹을 수 있다는 데에는 찬성입니다만 맛에는 가격이라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 부분에서 카페인 충전이라는 기능적인(연료로 대표되는 뉘앙스의)목적에서는 멀어지는게 사실이니까요.
거참 커피를 왜들 그리 미워하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