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대한옥-국수의 꿈
저녁을 대한옥에서 먹고 어젯밤 꿈을 꾸었다. 설렁탕, 수육과 함께 국수를 먹는데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배는 적절히 고팠고 ‘국수사리(음식점 메뉴의 표기)’는 고작 1,000원이었다. 그래서 호기롭게 시켰는데 엄청났다. 설렁탕을 특(8,000원)으로 시켰는데, 여기에도 국수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어 이것이 고기를 더 주는 ‘특’이 아닌 국수의 ‘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면인지 불은 소면인지 정확하게 분간이 어려운 국수는 먹는 동안 또 그만큼 불어 절대 줄지 않았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나는 그만큼 더 삶의 희망을 잃어가는데, 옆자리 손님이 귓속말로 이야기해주었다. 다 먹지 못하면 이제 주방에서 국수를 삶게 될 거라고. 얼마 만큼(공포에 질려 수치를 말해주었지만 기억은 못한다)을 삶아 내면 집에 돌아갈 수 있지만 불어서 양이 줄지 않으므로 말뿐인 약속이라고 했다. 그래서 얼마나오래 드시고 계시는 건가요? 글쎄… 27년? 그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다. 그래도 끝없이 삶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종합적으로는 그럭저럭 즐거운 경험이었다. 통상적인 한식과 탕반의 맥락 안에서 머무르겠다면 말이다. 수육을 아우르는 양념장은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감각적이었고, 설렁탕의 국물과 고기도 나쁘지 않았다. 밥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지은 뒤 가장 맛있을만한 시기에 먹었다. 그러나 건물을 나서자 머릿속이 온통 국수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틀에 한 끼 반 꼴로 국수를 먹고 있는데, 잠시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한편 통상적인 맥락 밖에서 생각하면 아쉬움은 있다. 영혼을 무한히 리필해주는 듯한 국수는 일단 너무 삶기도 했지만 표면의 상태로 보아 잘 헹군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꼬리 수육은 웬만한 식당의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힘을 좀 주어야 뜯기는 상태다. 뼈에서 분리되는 게 두려워 그 정도까지만 삶는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재료를 감안하면 분명히 좀 더 분해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념장은 분명 한식의 그것으로는 감각적이지만 꼬리 자체에 간이 안 되어 있으므로 맛이 확 피어오르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을 굳이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이제 이런 음식을 제대로 먹으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이다. 파스타가 항상 공격을 당하고 한식에서는 평양냉면이 만만한 대상이지만 사실 이런 곳에서도 6,000~8,000원짜리 설렁탕 한 그릇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봐야 멀건 국물과 밥(과 국수…가 대부분이므로) 수육 같은 거라도 한 접시 시키게 되는데, 그럼 1인당 약 25,000원은 들게 마련이다. 분위기나 위생-식탁은 이제 살균제 같은 걸로 닦아 줄 수 없을까-을 감안한다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모두의 마음에 서민음식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지만 따뜻하게 품는 만큼 서민적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한 백만 번쯤 말했지만 누군가 새롭게 시도한다고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습관이 그래서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