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1. 부활절이었나. ‘내 탓이오’가 지긋지긋해서 종교를 등진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우연히 주워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생각이 났다. 매년 부활절이면 성당에서 계란을 받아오곤 했다. 삶아서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먹을 수 있었지만 내켰던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은 그게 도시락 반찬으로 등장했다. 껍데기를 벗기고 사인펜이 물든 흰자의 일부를 도려낸 뒤 전날인가 먹었던 닭찜 양념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스불 위에서 끓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나는 즉시 심난해졌다. 내게 도시락 반찬이란 안 먹을 수도, 또 남겨 올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다지도 개인적인 이야기는 대체로 쓰고 싶지 않다. 이런 음식 이야기는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제 밤길을 걷다가 갑자기 너무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2. 살아 있는 꽃의 봄이 슬슬 지나가고 있으니 죽은 꽃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꽃을 사고 싶었다. 노란 꽃을 사고 싶었다. 딱 한 송이만 사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까먹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 다행스럽게도 꽃집이 있어서 나올때 꼭 사야겠노라고 마음 먹었으나 팔도 초계비빔면을 너무 열심히 찾다가 까먹었다.
알고 보니 집 앞에도 꽃집이 있었는데 외출중이라며 문이 닫혀 있었다. 전화번호도 딸려 있었지만 안을 들여다보니 노란 꽃은 화분에 담긴 것 밖에 없어 보며 그냥 돌아섰다. 전화까지 거는 유난을 떨고 한 송이만 사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슬픔이나 비극에는 반응하기가 너무 어렵다. 어느 시점에서 한 구석이 막혀 버린 것처럼 반응하지 못한다. 마음이 아프다고조차 말하기 부끄럽다. 그런 말을 하는 나를 의심한다. 나는 어느새 그런 인간이 되어 버렸다. 내 탓이다. 내 큰 탓이다. 내가 언제 아니라고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