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의) 찌개
나고 자라 20년을 붙박이로 살았지만 수원의 갈비가 그다지도 유명한지는 몰랐다. 그건 아마도 외식을, 특히 직화구이로 잘 하지 않는 ‘가풍’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뫄뫄 가든이니, 갈비니 하는 집들이 꽤 많기는 많았다. 그리고 언젠가 집 근처의 본수원 갈비에서 그 드문 직화구이 외식을 했을때, 고기도 고기지만 불 위에 바로 올려 놓는 된장 뚝배기가 어린 마음에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내 식탁을 꾸릴 때까지 ‘부루스타’류의 소형 가스레인지를 식탁에서 써 본 적도 없는지라, 뜨거운 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찌개는 참으로 생동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동적인 만큼 맛도 있을까. 물론 그 옛날 찌개의 맛까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종 고깃집에서 마무리로 찌개를 시켜 받아 보면 그나마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생동감-뜨거움/괴로움과 맞바꾸는-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대부분의 찌개가 막판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펄펄 끓여서 때로 불 위에 올려 놓아 온도를 계속 유지할 때도 있지만 재료, 즉 건더기가 잘 익지 않는다. 애호박은 설컹거리고 두부엔 국물의 맛이 배어 있지 않아 밍밍하다.
그러나 고깃집 찌개의 진짜 문제는 근본적으로 두부에 배어들 맛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언제적 드라마였던가? 강석우와 원미경이 부부로 등장했던 ‘아줌마’의 마지막회는 원미경과 정재환이 고깃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다른 대사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사실 쫓아 본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가 몇 회 곁눈질 했을 뿐이다), 정재환의 한 마디만 남아 있다. ‘찌개는 잡뼈 같은 걸로 푹 끓이고’였던가? 뼈인지 살인지 비계인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고깃집에는 무엇이든 자투리가 남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왜 그것을 활용한 국물의 찌개는 먹기가 어려울까. ‘거의’라는 부사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든 고깃집 찌개는 얄팍하다. 국물을 따로 내기 위해 건어물을 들이는 움직임이 과연 고기 먹는 행위의 콘셉트에 맞는다고 볼 수 있을까? 소위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만트라 말이다.
물론 멸치 등 건어물류를 우려낸 국물의 시원함이나 감칠맛이 고기 먹은 입을 가시는데는 더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따라서 그런류의 국물과 동물성 재료를 우려 지방과 젤라틴을 우려낸 국물 사이의 선택은 취향의 문제라고도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후자류의 찌개를 발견해서 시켜 보면 실제로 그런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채택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따로 언급하는 게 낫다 싶어 전체의 경험에서 또 분리해낸 로스옥의 돼지갈비 김치찌개도 그러했다. 등갈비와 편육 몇 점이 들어 있기는 했지만 국물 속에서 익은 맛이나 질감이 아니었다. 양념이 배어 있지도 않았고, 수분 속에서 오래 익힌 부드러움을 지니지도 않았다. 따로 익힌 것을 찌개 내기 직전 더했달까.
그밖에도 김치 건더기를 갈음하려 들었다는 의심마저 들 지경으로 많이 넣은 생파라던가, 정작 푹 익히지 않은 김치 등등도 사뭇 아쉬웠다. 하지만 그건 비단 이곳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식당이라면 적어도 영업시간만이라도 불은 언제나 타오르고 있다. 게다가 직화구이 고깃집이라면 불은 식탁의 영역까지 진출해 생동감으로 분위기를 장악한다. 그런데 이런 불이, 한식의 핵심이라는 국물을 맛이 우러나도록 진득하게 끓이지 못하고 있다. 가게 앞에 걸어놓은 가마솥에서, 또는 식탁 위의 냄비에서 눈에 보이게 펄펄 끓는다고 국물에 맛이 제대로 우러나는 게 아니다. 소비자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은근히 끓어야 제맛이 우러난다. 그런 국물이 너무 드물다. 고깃집의 찌개로 운을 떼었지만 얼마 전에 언급한 것처럼 탕반류도 다르지 않다. 바로 사나흘 전에 먹었던 청진옥의 해장국(특)은 건더기와 국물이 유난히 따로 노는 최악의 경험이었다. 한식 국물의 지향점은 대체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