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동] 원조나주곰탕-수육의 탁월함과 국물의 허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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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방화동까지 곰탕을 먹으러 갔다. 같은 강서지역이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도 꽤 멀다. 토요일이었는데 2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좋은 점부터 말하자면 수육이 꽤 훌륭하다. 별 생각 없이 소(180g 20,000원)를 주문했는데 ‘스지’를 포함한 세 가지 부위의 조리가 하나같이 모두 훌륭했다. 언제나 떠올리면 치가 떨리는 을밀대의 수육 같은 것은 물론, 시내에서 먹을 수 있는 웬만한 수육보다 훨씬 나았다. 숨을 죽여 깐 부추도 좋았다. ‘서비스’격으로 매운 양념이 된 고기를 조금 주는데 이 또한 조리 상태가 굉장히 좋고 매운맛과 짠맛의 균형도 대체로 괜찮았다.

IMG_7948그러나 그런 고기에 비해 곰탕(특 12,000원)의 국물이 너무 맛없었다. 받아서 한 숟갈 입에 넣으니 초등학교 시절 ‘곰을 끓여서 곰탕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던 민속촌의 곰탕이 생각났다. 멀건데 그에 비해서는 강한 (조미료의) 단맛이 혀를 강타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거의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토렴을 감안하더라도 거의 미지근한 쪽에 가까울 정도로 온도가 낮아서 더더욱 허망했다. 그런 온도의 흥건한 국물에서 생 파와 밥알을 건져 먹는 건 그렇게 즐겁지 않다. 한편 조금 신기하게도 수육의 고기와 익은 정도마저 좀 달라서, 곰탕에 든 것들이 전반적으로 좀 덜 익었다.

IMG_7944외식용 한식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음식조차 갈수록 범위가 좁아지므로 이런 음식점의 존재는 그 자체로 반가울 수 있다. 다만 보통이 9,000원인 곰탕은 재료(육우, 그러나 난 멀건 국물 곰탕에 굳이 한우를 썼다고 티를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와 위치를 감안하면 멀건 국물 때문에 썩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수육의 조리 상태가 꽤 훌륭하므로, 업장에 앉아서 먹는 것보다는 식어도 먹을만할 확률이 높은 수육을 좀 푸짐하게 포장해와서 시트러스 바탕 양념장-소스를 만들어 로제 또는 보졸레 빌라쥬 등의 와인과 함께 먹으면 꽤 훌륭할 것이라 생각했다.

IMG_7947한편 그와 별도로 왜 한식의 탕반은 동물성 재료를 우려내면서도 지방이나 젤라틴 등을 거세한 맑은 국물을 선호하는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특히 대량으로 자주 만들기 때문에 언제나 최적의 신맛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낼 확률이 적은, 따라서 고춧가루의 매운맛과 과도한 조미료의 들척지근함이 강세인 김치가 대부분인 요즘 상황에서 지방의 두터움이나 젤라틴의 풍성한 감촉이 없는 국물은 상호 보완을 아주 잘하는 짝이라 보기 어렵다. 국물을 두텁게 만들 의향이 없다면 차라리 고춧가루 범벅인 김치를 없애는 것도 균형을 다시 맞출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참고로 이곳의 깍두기는 아예 식초를 더해 신맛을 보탰던데 썩 훌륭하지 않았다.

*사족: 옆옆 건물 2층에 일곱 석만 놓고 문 잠그고 영업하는 바 ‘웨스트 햄릿’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