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수 없는 나날들
중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나날들이다. 첫 번째는 ‘unable to think’ 쯤이 될 것이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일이 쌓이고 쌓여서 들춰볼 엄두조차 못 내고 한참을 앓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맨 바깥의 몇 켜를 일단 들어냈다. 그리고 나니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좀 나는 상황이다. 대신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다. 그냥 일을 한다. 쉬는 시간에는 소파에 누워 있는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집이 더러워지면 청소를 한다. 그릇이 쌓이면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저녁을 먹으면 5km쯤 걷는다. 하지만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다. 내가 하지만 또한 내가 하지 않는다. 당분간 계속 이럴 것이다. 5년만에 새 ‘매스 이펙트’ 게임이 나오지만, 또한 엄청나게 기다려 왔지만 아마도 당분간은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unexpected’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없는 나날들의 틈바구니로 생각할 수 없는 나날들이 흘러간다. 제발 좀 빨리 스쳐 지나갔으면 좋을 순간도, 오랫동안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도 모두 같은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그 둘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자리를 바꾸는지 감안하면 사실은 공평하지만, 기쁘지는 않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빨리 흘려 보내거나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공평함이 대가 아닌 대가일 것이다. 남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