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
‘실버 스푼’을 마감하고 일주일을 꼬박 쉬었다(물론 구몬은 했지만). 한참 동안 대부분의 주말에도 있했으므로 사흘째까지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익숙치 않았으나, 그 다음부터는 소파에 누워 식물처럼 쉬었다. 그리고는 어제 마치 여느 월요일인양 스스로를 속이며 오전부터 일을 시작했으나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오후에 다른 일로 집을 비웠다.
그래서 지인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을 보러가자고 했을때 흔쾌히 대답하고는, 아침에서야 잠깐 망설였다. 오늘이 화요일 즉 운동 가는 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간다면 적어도 저녁 때까지는 일을 못한다는 의미인데… 그러나 왠지 옛날 생각이 나서 전시회에 가기로 한 결정을 고수했다.
빌라 사부아나 위니테 다비타시옹, 그리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의 건물 몇 군데를 답사한 적 있다. 그의 건축 5원칙이니 모더니즘이니 돔이노니 하는 것들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직도 그럭저럭 읊을 수 있지만 실제로 내가 그의 작업을 직접 경험하고 이후 짧게 실무를 하면서 느낀 건 사실 하나였다. 건축은 야심이 큰 사람이 택하는 직업이구나. 건축은 필연적으로 사람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좀 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조종(manipulate)할 수 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 가운데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칼레이터가 없는 규모의 건물 같은 건 하지 않는다’라는 신조를 가진 부류도 있었다. 그래서 큰 회사에서 낮에는 큰 규모의 건물에 관여하고 집에 돌아가 취미로 주택 같은 것의 설계를 한다.
나는 당연히 그런 팔자가 아니었으니, 실무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서 주는 스케치나 디테일만 캐드로 하루 종일 ‘치다’보면 감각이 없어진다. 이것은 어떤 건물의 일부인가, 무슨 기능을 하는가. 왜 이런 디자인을 선택했는가. 어떻게 보면 현대의 공장식 육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비슷해진다. 스티로폼 쟁반에 담겨 랩에 싸인, 조각난 고깃덩이는 정확하게 동물의 어느 부위에서 온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먹기 쉽다. 석고벽 단면도의 디테일을 수십 개 그리거나, 주차장에서 공간 한두 개 더 낸다고 하루 종일 이리저리 셀을 옮기다 퇴근하면 기분이 그랬다.
하여간 그런 회의를 느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때 가장 먼저 ‘이제 건축을 그만 둬야지’라고 순간 및 충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절반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결국은 2.5차원적 사고의 인간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회의였다. 더 잘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행복해지는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당시엔 건축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어떤 직업인이 될지 전혀 그릴 수 없었다. 하긴, 정리해고 직후에 과연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또한 지나치게 고민하고 또 의식했다. 직업은 직업이고 굳이 소질이 뛰어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왠지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휘리릭 보고 나와서 전시회가 정확하게 어땠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몇 가지 사실만을 말하자면 일단 입장료가 15,000원이고 3월 26일까지 한다. 관람 시간은 11시부터 20시까지다. 의외로 건축에 대한 자료보다 스케치 또는 삽화가 많았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학생 때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워낙 거장이시니 건축만 짚고 넘어가기에도 바빴다거나, 내가 그분의 야심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작품집 등을 따로 사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삽화들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면 차라리 건축 자체에 대한 자료가 많은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은 들었다.
*사족: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것. 이 전시회에서도 (당연하게도) 크게 다루는 롱샹 성당은 당시 답사 코스와 멀어 가지 않았는데, 몇 명이 별도로 보겠다고 파리에서 바젤로 옮기는 일정 가운데 약간 무리를 해서 갔다가 일행과 타야할 기차편을 놓치고 이후 합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덕분에 12시간인가 내리 기차를 타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세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유럽에서 돌아온 후 자살을 했다. 차고에서 시동을 걸어 놓고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셨다고 했다. 그에겐 아이가 있었다고도 들었다.
*사족 2: 아, 뮤즈 타령. 청/독자를 설정할 여유가 없고 책을 몇 권 내지도 않았지만 독자층을 상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늘 그저 내 스스로가 궁금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쓴다는 심정이었던지라 누군가를 어느 세계 안에 고정시켜 놓고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니 뭐 그건 내 원고가 ‘독자층을 누구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피드백을 들어 절망해서가 아니라…
*사족 3.
저도 어머니 타령은 좀 싫었습니다. 전시는 잘 봤지만.. 같이 간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시더라구요
사족 3은 읽다가 피식했네요.
대놓고 배낀 것이 저렇게 미화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