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처참한 실패
아침에 운동을 갔다 와서는 빨래를 돌려 놓고 두 시 넘어서까지 그냥 잤다. 그리고는 늦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었다. 토요일 아침 운동 갈 때마다 먹는 맥모닝의 커피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2016년은 참으로 설명하기 간단한 해다. 한마디로 처참한 실패였다. 전조는 이미 2015년에 찾아왔다. 어떤 사건 하나를 기억하는데 그때 예감이 불길했다.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연속적으로 찾아올 실패의 단초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올해는 한층 더 심했다. 씨는 계속 뿌렸지만 아무 것도 거두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 일정 수준 이상 지속되면 원인의 정확한 분석이나 인식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그저 실패만이 다가오고, 실패만을 생각한다. 일 년 내내 그랬다.
따지고 보면 한편 나는 확실하게 미련했다. 수확하지 못하는 글쓰기는 자괴감을 남기고, 그렇게 남은 자괴감은 인간을 좀먹는다. 나는 그 연쇄반응의 발생 가능성 예측에 실패했다. 예전처럼 새벽까지 일하고 술을 마시고 자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 믿었다.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괜찮을 거라 믿었다. 속단이었다. 바로 내가 스스로 하는 일이면서도 나는 한편 여러 갈래의 영향 ramification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흘러간 나머지, 종내에는 일종의 불운 같은 형식으로 예기치 않은 죽음 같은 게 찾아오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마저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불과 3개월 사이에 발견하지 못한 급성 불치 질환이 발견된다거나, 그도 아니라면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고 믿고 살았다. 너무 말을 쉽게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그런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쏟아 붓기는 하지만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 사람은 기다리게 된다. 보내거나 때로 날리기도 하던 시간은 종내에는 녹여야 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2016년은 통째로 녹이는 시간이었다. 얼음보다는 촛농에 가까웠다. 온 얼굴에 튀어 찰나 참을 수 없는 뜨거움을 안기고 들러 붙는다. 잘못 떼어내면 흉터도 남는다. 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뜨거운 게 그쪽으로 튈 수도 있다. 이래저래 착잡하디 착잡한 해였다. 보내든 날리든 녹이든, 어쨌든 시간은 쓸 수만 있다.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더 착잡하다.
해가 질 무렵 뜨거운 물을 한 냄비 끓여서 부엌을 간단히 청소하고 식기세척기를 돌렸다. 아마도 내일 또 한 냄비 끓여 닦아야 할 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한참 처리하지 못했던 쓰레기를 전부 꺼내 버렸다. 물을 끓인 김에 파스타를 간단하게 삶아 저녁을 먹고 잘 다니지 않는 길로만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내년은 과연 다를까? 아직도 녹여 보내야 할 시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인간의 과오는 신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에게 먼저 심판을 받는다.
조지 마이클도 세상을 떠났고, 이래저래 어울리는 노래다.
힘드실 텐데 제가 혹여나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시편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혹시나 실례가 됐다면 사과드립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