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칼국수 이대로 좋은가?
이틀째 바지락 칼국수 먹기 좋은 날씨다. 그래서 지난 주에 아무데서나 먹었던 걸 꺼내놓고 생각해보았다. 바지락 칼국수, 이대로 좋은가? 무엇보다 바지락 칼국수의 가장 큰 단점은, 음식 이름에 붙을 정도로 주재료인 바지락이 딱히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건이 그렇게 조성되어 있다.
대체 국물에 얼만큼 맛을 불어 넣었는지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어쨌든 바지락은 이미 생기를 잃었다. 애초에 별로 먹을 게 남아 있지 않지만 그나마 과조리 되어 뻣뻣하다. 하나씩 건져 먹기도 딱히 즐겁거나 편하지 않지만, 안 먹고 건너 뛰려고 해도 대체로 한 주먹씩 들어 있으니 국수만 건져 먹기도 어렵다.
이런 설정은 애초에 대중 음식으로 분류되는 바지락 칼국수의 정체성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싼 음식=빨리 먹고 가는 것’인데 바지락을 일일이 집어 먹거나 피해가거나, 원하는 만큼 빨리 먹기가 어려워진다. 국수라는 음식은 대체로 ‘후루룩’ 먹어야 즐거운데 그럴 수 없고, 이는 손님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 가게의 회전에도 미약하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손님 가득 들어찬 사무실 거리의 바지락 칼국수집에서, 음식점을 가득 메운 점심 손님이 모두 바지락을 골라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재료가 개입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경우보다 회전이 훨씬 더뎌질 수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어차피 국물에 맛을 모두 바쳤고 먹어 봐야 질기기만 한 바지락이라면 차라리 국물만 낸 뒤 그냥 과감하게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애초에 바지락을 많이 안 쓰는 곳이라면 조미료에 기댈 것이니 필요 없고, 정말 바지락-과 다른 해물-만으로 국물을 낸 곳이라면 더더욱 필요 없을 것이다. 국물을 내는 재료, 음식과 함께 먹는 재료를 구분하자는 말이다. 설렁탕 등 고기를 바탕으로 한 국물 음식을 놓고 둘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는데, 바지락 칼국수 같은 음식도 마찬가지다.
물론 인식이 문제다. 바지락 칼국수라는데 바지락이 보이지 않는다면 먹는 이는 불신할 수 있다. 국물에 충분히 맛을 보탤 테니 사실 혀가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지만, 어차피 대중 음식으로서 바지락 칼국수의 위상을 감안하면 조개가 안 보일때 먹는 이는 분노할 수 있다.
그래서 국물에 몸바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건더기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어차피 칼국수는 국물에 면을 넣고 익을 때까지 끓여야 완성된다. 주문을 받으면 미리 바지락으로 낸 국물에 면과 국물에 몸바치지 않을 채소-애호박 등-을 넣고 끓인다. 그리고 살만 발라 파는 바지락을 따로 준비해 적정량 조리 마지막에 얹고 한소끔 끓이거나, 아예 여열로 익도록 조리가 끝난 칼국수에 고명으로 얹는다. 이렇게 익은 바지락은 국물에 몸바치지 않았으니 맛도 있을 뿐더러, 과조리가 되지 않아 뻣뻣할 이유도 없다. 물론 껍데기가 없으니 훨씬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다.
현재 대중 음식 문법이 너무나도 굳어졌기 때문에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방법을 한식의 고급화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많은 레스토랑에서 수프의 건더기와 국물을 분리해 준비한 다음, 식탁에 접시를 놓고 후자를 부어주는 서비스를 활용한다. 적절한 온도 조절 및 현장성 등이 수프 또는 소스 바탕의 여느 음식에 변주의 재미를 불어 넣을 수 있다.
한식의 계승 또는 현대화를 목표로 삼는 레스토랑이라면 이런 서비스를 얼마든지 활용해 칼국수 같은 음식을 현대화 및 개인화 할 수 있다. 국물을 부으면 완성될 정도로 살짝 설익힌 면을 접시에 담고, 식탁에서 육수를 부어준다. 비단 칼국수 뿐만 아니라 어떠한 종류의 국물 바탕 국수 음식에 응용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을 가장 가깝게 활용한 음식이 2~3년 전 정식당-이전 직전-의 ‘트리플 해장국’이었다. 국물은 국물 대로 내 바탕으로 삼고, 껍질을 바삭하게 지진 돼지고기 수육을 중심에 둔다. 라연의 평양냉면이 한국 냉면의 미래라는 느낌을 주었다면, 트리플 해장국은 한국 국물 음식의 미래라는 느낌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제 코지마(미슐랭 1스타 스시야)에 갔었는데, 재첩을 넣은 아카다시(된장국 일종)이 나왔습니다.
그 때 셰프가 건더기는 먹지 말고 국물만 마시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았네요.
재첩은 국물 내는 용도만으로 썼을 뿐이고, 다만 재첩으로 끓였다는 걸 직접 보여주기 위해 재첩을 넣은 것이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됬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쪼그라든 재첩 살 끄집어 먹는 모습이 떠오르니 왠지 부끄러워지네요;;
1.한국은 국물을 넣고 푹 고아먹는 데에 대한 이상할정도의 집착이 있어서 나중에 올리는 건더기는 양날의 검이 될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두전골에서 처음부터 만두를 넣고 전골이 익을 때 쯤이면 만두피가 다 부서질 정도로 팔팔 끓이면 도데체 만두는 왜 넣는지 심히 의문스러운데 그걸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긴 하더라구요.
2. 바지락 빼먹는건 홍합짬뽕의 유사 사례에서 비추어보면…산처럼 쌓인 홍합을 건져먹으며 (그사이 면은 불어터지고 국물은 과도한 해물맛에 텁텁해지지만) 재미를 느끼는 분들이 계시는 한 요원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껍질채 넣으면 양도 많아보이고 손도 덜가니 업체 측에서는 굳이 바꿔서 있을지도 모르는 손님의 클레임을 감수하면서까지 까넣을 이유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육수 내는 국물음식 운영은 굉장히 어려운 싸움입니다. 100점짜리 결과물을 내놓아도, 저 정답을 이해해주는 손님층이 너무 얇습니다.
parc, 수불 등 깔끔한 플레이팅으로 내놓는 곳은 더 늘어나고 인기 얻을지 몰라도, 대중국물음식 문화는 더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 봅니다. 근래 가본 곳 중엔 양재 [임병주 산동칼국수]가 바지락을 따로 삶아 우려낸 육수를 쓰던데, 고명은 그 삶아서 진미가 다 빠진 걸 그대로 얹어놓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