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프라이빗 133

 

어쨌든 가보았던 음식점은 기억한다. 어떤 곳은 때로 잠깐 전면으로 부각되었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 희미해진다. 다른 곳은 언제나 뒤에 머물러 있지만 존재감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삼청동의 프라이빗 133은 굳이 분류하자면 전자다. 올 초에 갔다가 리뷰할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재방문 안했고 이후 아주 가끔씩 생각이 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요 며칠 갑작스레 부쩍 전면으로 치고 올라왔다.

물론 이유를 확실하게 안다. 최근에 방문했던 어떤 레스토랑 때문이다. 그에 대해 언제 언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자질구레한 단점을 완벽에 가까운 craftsmanship이 전부 압도하는 곳이었다. 음식은 100% 오브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다듬어 내는 곳일 것이다. 맛을 떠나 그 완성도를 경험하기 위해서 한번쯤 지갑을 열어도 괜찮을 정도다. 경험보다 감상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먹기와 별개로 보기 위한 음식의 장점을 극대화했달까.

그런 음식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 요리는 많은 요소로 이루어진다. 여러 사람이 나눠 만들어야 하고, 각각의 솜씨가 빼어나야 가능하다. 프라이빗 133의 음식을 상기했던 이유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지향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만 혼자든 여럿이든 당시 주방의 인력으로 불가능한 게 음식에서 드러난다. 만드는 사람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뉴를 보니 85,000원이었다. 주방의 사정은 전혀 모르겠지만 복잡한 음식을 이런 가격에 내는 거라면 거의 혼자 만들지 않았을까. 거기에 술은 그냥 원가에 가깝다. 대신 거의 아무 것도 없고 잔만 준다. 심지어 따라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킨 사람도 나 하나 뿐이었다.

실전으로 연습하는 레스토랑을 너무 많이 겪어서 이젠 좀 무감각하다.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연습하는 곳도 가본 적 있다. 말도 안되는 가격표를 붙여놓고, 집에서 요리책 보고 만들어 본 레스토랑 음식의 맛을 레스토랑에서 낸다. 차라리 그런 곳이 나을까, 아니면 자기가 연습하는 줄도 모르고 연습하는 곳이 더 나을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인식하든 안 하든, 식탁에 음식을 올리는 원동력은 결국 자기 객관화 없는 일종의 나이브함 아닐까.

아직까지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기본적으로 요리도 남초 산업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그 많은 남성들 요리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일종의 수줍음의 막 없이, 서른이 넘었으면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면 굳이 드러낼 필요 없는, 덜 자란 소년의 그것 같은 미소의 탈 없이는 자기 요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공적자아도 없는 이들이 전부 남성인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인 걸까, 아니면 분명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패턴이나 경향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