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의 실패, 쌀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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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의 실패

명절 전후가 한식을 도마에 올려 놓기 가장 좋은 시기다. 좋든 나쁘든 그나마 관심이 쏠린다. 트위터에서는 송편 이야기가 나왔다. 콩과 깨송편에 대한 이분법적 선호도의 대립이다. 물리지 않아 콩송편을 더 좋아하지만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진짜 문제는 떡 자체다. 과연 떡은 현대에 의미 있는 먹을 거리일까. 시간이 갈 수록 ‘아니다’ 쪽으로 기운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습관을 고수하고 변화를 도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떡은 실패했다. 극복을 위한 세 가지 과제를 제안한다.

1. 밀도와 질감의 해결: 가벼워져야 한다. 쌀과 밥을 짓이겨 만드니 떡은 무겁고 또 아밀로펙틴 때문에 끈적거린다. 먹는 즐거움도, 현대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휴대성도 떨어진다. 많이 먹을 이유도 없지만 그러기도 어렵다.발효는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단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부피가 커지는 동안 소위 “풍미™”도 좋아진다. 떡에는 이럴 기회가 없다. 팥이나 깨 등의 소, 아니면 참기름에 의지해야 맛이 난다. 조청도 있다(다만 설탕의 긍정적 대안으로 생각하지 마시길).

하지만 과연 떡이 가벼워질 수 있을까. 쌀가루는 글루텐이 없으니 발효에 밀 만큼 견뎌내지 못한다. 말하자면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밀도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떡으로 케이크 모양을 만들어 놓고 새로운 길이라 착각한다. 둘은 전혀 다른 음식이며, 떡케이크는 밀가루 케이크의 전통적 대안이 절대 될 수 없다.

2. 단맛/짠맛 사이의 양자택일: 떡은 선택해야 한다. 맛 이전에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떡은 식사 대용인가, 아니면 디저트인가? 일단 선택해야 맛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물론 이미 짠맛과 단맛 위주의 떡이 각각 존재한다. 하지만 둘 다 엉거주춤하다. 식사 대용이라면 라면 떡 하나로 끼니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맛과 관련 요소를 품어야 한다. 반면 디저트라면 단맛도 중요하지만 앞서 언급한 밀도가 더 중요하다. 가벼운 한입거리가 ‘임팩트’있는 단맛을 지녀야 한다. 떡이 내세우는 ‘은은함’은 더 이상 덤목이 아닐 수 있다.

3. 새로운 맛의 편입: 전통이라 철썩같이 믿는 게 습관이고 핑계일 수 있다. 재료의 폭이 더 넓어져야 한다. 제주도에서 나오는 레몬은 국산 재료인가 아닌가? 새로운 재료를 회피하는 이유가 정말 전통적인 맛의 표정 유지 때문인가, 아니면 편입을 위한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인가? 현재 한식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자기객관화고, 떡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 문헌을 파헤쳐 당시의 음식을 재현하는 시도도 의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와 현대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는 건 별개의 사안이다. 전자가 후자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물론 새로운 재료의 편입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방법론 또한 익히거나 개발하여야 한다. 한국의 식문화는 언제나 눈에 정확하게 들어오는 만큼의 맛을 내는데 치중한다. 생과일 타르트처럼 재료가 그대로 보여야 맛 또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공기를 불어넣기 쉽지 않은 떡에 같은 방법론이 먹힐 거라 보지 않는다. 한결 더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방법, 이를테면 우려내기 등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전통적인지 잘 모르겠지만 설탕에 과일 등을 절이는 ‘청’ 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데, 과일이든 국물이든 떡에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쌀의 위기

한편 떡을 도마에 올리면 원재료인 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쌀 소비량이 줄고 있다고 한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과연 떡이 쌀 소비 촉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명맥만 유지하는 현 상황이라면 가망 없다고 본다. 결국 쌀은 밥의 테두리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은 한 가지 밖에 없다. 밥을 먹되, 짓고 차리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예전 글에서 다뤘듯, 쌀과 밥을 먹기 위한 환경 조성은 빵을 먹기 위한 것보다 훨씬 번거롭다. 이를 줄이지 않으면 쌀 소비는 더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즉석밥과 도시락의 발달을 높이 사고, 더 발달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즉석밥 아닌, 그날 지은 밥만 편의점에서 따로 판다. 이런 시도도 필요하다. 쌀과 밥을 가족주의 등과 엮어 ‘밥 해 먹지 않는 삭막한 삶’ 등 감정적으로 접근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고, 되려 쌀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1인 가정의 비율 증가와 여성혐오가 미치는 성편향적 가사 노동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 한, 식탁과 식사의 지평은 쌀의 입지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3 Responses

  1. 단단 says:

    제가 떡을 안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유제품에 의한 기름진 느낌이 없어서 먹고 나도 영혼이 위로를 받지 못 하기 때문.
    기름에 튀겨 집청 처리한 유과는 잘 먹습니다.

  2. JS says:

    아시아에서 주식으로 밥을 소비하는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밥 자체가 일단 소화 문제나 탄수화물 중독등 오히려 면식이나 빵에비해 나쁘다는 편견을 갖고있습니다. 게다가 국밥처럼 밥에 수분을 곁들이면 소화까지 안되 하루종일 소위 말하는 든든함까지 느껴지는데 이런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3. Tickl says:

    저는 1에서 말씀하신 이유로 거의 떡을 안 먹는데 증편만은 잘 먹어요ㅋㅋ 잘 만드는 집은 정말 확연히 향도 좋고 발효된 신맛이 상큼?하게 맛있더라고요. 얘도 맛이 기껏해야 백미, 흑미 두 가지이니 더 여러 가지 맛에 파는 포장단위도 좀 작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써놓고 보니 떡에만 느끼는 소망은 아닌 것 같네요ㅠㅠ